독서일기(성찰)

불안의 책

자작나무의숲 2016. 4. 17. 13:47

1. 개괄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산문 <불안의 책>을 읽었다. 저자는 19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고, 1935년 4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이 책은 사후인 1982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사실없는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481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페소아는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신비주의적 민족주의자'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그의 정치사상은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무정부주의라고 평가받는다.


2. 발췌

그는 지켜야 할 의무라곤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자랐다. 어느 집단에도 속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닌 적도 없었다. 어떤 단체의 일원이 된 적도 없었다(서문 중에서).


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을 믿었듯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동냥 주는 것을 거절하는 이가 동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 주머니 단추를 풀기 귀찮아서 그러듯이, 결국 내가 원하는 것들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착취당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착취당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바스케스 사장에게 착취당하는 것이 허영과 명예, 울분과 질투, 또는 불가능한 꿈에 착취당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까지, 가짜로라도 스핑크스가 되어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사실 가짜 스핑크스에 불과하며 우리가 정말로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부조리야말로 신성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고, 어떤 이들은 그 세상이다.


나의 크기는 내가 보는 것들의 크기이지

내 키의 크기가 아니라네


낭만주의의 근본 결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혼동하는 데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마음 깊이 절실히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낌을 가지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생각을 가지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느끼는 것이 사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지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을 키우는 양식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제 느낀 것을 오늘도 느낄 수는 없다. 어제 느낀 것을 오늘도 느낀다면, 그건 어제를 기억하는 것이지 느끼는 게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생물학자 헤켈의 글에 따르면, 평범한 인간과 우월한 인간(말하자면 괴테나 칸트 같은) 사이의 거리는 평범한 인간과 원숭이 사이보다 훨씬 멀다는 것이다.


자유란 고립을 견디는 능력이다. 닫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멀리 떨어져 살 수 있다면, 즉 돈이나 친교, 또는 사랑이나 명예, 호기심 등, 조용히 혼자서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들은 해결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만일 혼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노예로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외롭다는 느낌에 싸인 채 홀로 남았다. 배의 존재이유는 항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항해가 아니라 항구에 도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착해야 할 항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항해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러다보니 사는 건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항해가 전부라는 선원들의 모험적인 수칙을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것이 인생의 규칙이다.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 마음으로 뭔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인생은 감탄사와 의문사 사이의 머뭇거림이다. 의심에는 마침표가 있기 마련이다.


내 생각에 우리에게는

술을 마시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좋은 술, 친구, 또는

갈증, 아니면 나중에 갈증이 생길까봐,

아니면 아무거나 다른 이유로.

(올드리치 학장)


변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게 내 것이다. 내가 이룬 모든 일 중에서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 내 것이다.


3. 소감

페소아는 오펠리아라는 여인을 흠모했던 시절에 연애편지와 연애시를 남겼을 뿐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2016. 4. 17.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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