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자작나무의숲 2016. 4. 30. 15:38

1. 개괄

페터 한트케가 쓴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를 읽었다. 저자는 194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1972년 이 작품을 출간하였다. 이 작품은 종적을 감춘 아내 유디트를 찾으러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모험 가득한 이별이야기로, 그의 대표적인 성장소설로 평가받는다.


2. 발췌

편지는 짧고 간명했다. "나는 지금 뉴육에 있어요. 더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설사 누군가와 쉽사리 친해진다손치더라도 다음 날이면 관계를 새로 시작해야만 했어. 


내가 받는 인상들이라는 게 모두 익히 알려져 있는 인상들의 반복일 뿐이라는 거야. 그 말은 내가 아직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보지 못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음을 의미해. 그러니까 우리가 가난하게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만 경험하게 되었다는 말이지.


지금은 아이들이 무언가로부터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원인이 소유욕이 아니라 공포감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


풍경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역사적인 시간이 일어났을 때만 비로소 의미를 갖지요. 한 그루의 거대한 떡갈나무만으로는 그림이 될 수 없어요. 그것이 다른 무엇을 위해 서 있을 때만 하나의 그림으로 존재할 수 있죠.


나는 그녀가 하나의 존재로 거듭나도록 해주려고 그야말로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왔다.


선생님은 왜 항상 나라는 말 대신에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세요? /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함께하는 공적인 행동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겁니다. 일인칭은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대표할 때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 미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토라져서 입을 한 발쯤 내미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아무도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우리는 외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혼자 있으면 무시당하고 자기 자신만 염탐하게 되죠.


그러자 유디트가 우리가 어떻게 이곳 미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동안 나를 추적하면서 많은 해코지는 물론이고 살해까지 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은 마침내 서로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3. 소감

번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저자는 "문학의 존재 근거는 언어 그 자체이지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인식에 있지 않다"는 언어 내재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당시의 신사실주의적 문학 트렌드나 이른바 참여문학적 문학 풍토와의 결별을 선언한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나'라는 고립된 자아를 버리고 '우리'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은 생겨난다라고 한다.


                       2016. 4. 3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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