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경제경영)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5. 25. 10:12

1. 개괄

마이클 페럴먼이 쓴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를 읽었다. 저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 경제학자로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시장 기능을 맹신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서이다. 노동을 옥죄는 프로크루스테스적인 획일주의는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훼손하고, 끝내 자본주의 자체의 활력까지 떨어뜨려 위기를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2. 발췌

무지는 지식을 낳기보다 확신으로 이어지는 수가 많다(찰스 다윈) 

 

미국의 증권가 월스트리트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보다, 일자리를 없애는 기업을 더 우대한다. 업계 지도자들에게는 일자리보다 이윤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거대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헛된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보조금을 뜯어내는데 대단히 능숙하다.

 

실업률이 이례적으로 낮았던 1960년대 후반,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획일적인 권위는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사랑의 대상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게 더 안전하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결론은 중세의 군주국만큼이나 자본주의 시대의 경영진에도 똑같이 해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획일주의가 자본주의 시대의 일터에서 일정 부분 필수 요건이다.

 

실업은 매우 특별한 문제이다. 더욱이 그것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실직 1년이나 2년 뒤에도 상처를 입힌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그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 심지어 일터에 다시 복귀했을 때라도, 당신은 여전히 심리적 상처 탓에 실직의 공포를 안고 산다(리처드 레이어드)

 

정부의 공식 자료와 업계 지도자들의 조사 결과를 활용해, 레스터는 주류 경제학 이론의 가정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를 찾아냈다. 최저임금의 증액이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명령 체계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과 별로 접촉하지 않는 사정을 감안할 때, 종업원들의 미개발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대신 경영진은 위계질서의 아래쪽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과 절대적인 근면을 요구한다.

 

사회적 개혁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힘은 일반인들이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들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하는 일이다. 정확히 묘사된 외부적인 조건이 더 나은 조직화를 허용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강력한 힘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책임을 져야 한다. 다시 말해, 승리는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미국은 경제 현대화에서 중심축이었던 철도 산업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보조금을 지급했다. 노예 노동이 막대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경제적 성공 사례들-영국, 미국, 독일, 또는 일본- 중 자기네 경제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시장에만 의존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한 연구는 센의 접근법을 더 간결하게 묘사했다. "중요한 점은......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아마르티아 센에게 물질적 재화는 그 자체로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라, 역량을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결론적으로 센은 절대적으로 옳다. GDP는 역량을 개발하는 잣대로 한 사회의 성공을 평가해 보여주기에는 빈약한 지표이다.

 

제네럴 일렉트릭은 노동자들의 협력 없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에서 불가피한 고장을 제거하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숫자에 의한 경영은 인적 비용과 인간 잠재력의 파괴를 모두 무시한다....결국,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관리자들은 자신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원칙을 무시하고 지름길로 간다...숫자에 의한 경영은 관료 체제의 꼭대기에 앉아있는 이들과, 일상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는다.

 

상대방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신뢰는 화답을 받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권한을 주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대신, 고용주들은 감시 노동(감독자들)에 의존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자율성을 억제한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은 사람들이 일정 수준의 도덕적 자제력을 발휘한다면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미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사람의 명성이 작은 공동체에서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반복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들이 이리저리 이동할 수 있는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는 공동체의 개념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봉건주의의 붕괴는 인류의 생산적인 활동들을 고양시켜 '온갖 곳에 퍼져있는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고된 노동'으로 바꿔놓았다고 경제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인류의 발전에서 그 다음 단계는 노동을 기쁨으로 고양시키는 쪽으로 가능한 한 멀리 나아갈 것이다.

 

3. 소감

이 책은 시장이나 관리 통제 모두 특별히 효율적이지 않고 '협력'이 더 나은 대안을 제공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협력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2014. 5. 25.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