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2. 8. 10:00

1. 개괄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었다. 저자가 1864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책은 기존의 소설과 달리 사건 전개는 거의 없고 지하에서 수십년 동안 살아온 남자의 심리묘사가 대부분이며 도스토예프스키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 일컫는다. 사건은 두 가지를 들려준다. 초대받지도 않은 동창생들 모임에 참석해 그들에게 무시당한 일과 유곽에서 만난 매춘부 리자에게 온갖 잔인한 말을 늘어놓았다가 그녀가 집으로 찾아올까봐 노심초사했던 일이다.

 

2. 발췌

나는 아픈 인간이다......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란 인간은 통 매력이 없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치통 속에서도 쾌감을 찾겠다는 거로군요!

 

이성은 오직 이성일 뿐이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만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욕망은 삶 전체, 즉 이성과 온갖 긁적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 전체의 발현이다. 그 발현에 있어 우리의 삶은 종종 너저분한 꼴이 되기 십상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삶이지, 한낱 제곱근 개평방법(開平方法) 따위는 아니다.

 

물론 여러분의 이 모든 말은 지금 나 자신이 지어낸 것이다. 이것도 역시 지하의 산물이다. 나는거기서 사십 년 동안 계속 여러분의 이런 말을 문틈으로 엿들어 왔다.

 

나는 하다못해 나 자신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 어떤 진실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곁들여 지적하자면, 하이네는 믿을 말한 자서전이란 거의 있을 수 없다고, 인간이란 스스로 자신에 대한 거짓말을 늘어 놓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망증이 심한 양심을 추억으로써 응징하느라, 나를 만나기 전의 일을 전부 이야기 해주었지((네크라소프의 시 중에서)

 

그 당시 나는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나의 삶은 그때도 음울하고 무질서하고 야생에 가까울 만큼 고독했다. 나는 그 누구와도 사귀지 않고 심지어 말하는 것조차 피하면서 점점 더 나만의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그 무렵에 이미 나는 내 영혼 속에 지하를 담고 다녔다. 어쩌다 누가 나를 보지나 않을까, 나와 마주치지는 않을까, 나를 알아보지나 않을까 끔찍이 두려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원래 겁쟁이라서 그 장교한테 겁을 집어먹었다곤 생각하지 말아 달라. 나는 막상 현실에 부닥치면 끊임없이 겁을 집어먹지만 그 영혼에 있어선 절대 겁쟁이가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는 게 나쁘다는 거야.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정신을 좀 차려. 아직은 시간이 있다니까. 너는 아직 젊고 예뻐.

 

인간이란 자기 괴로움을 세는 것만 좋아하지. 자기 행복은 아예 세질 않아. 만약 제대로 센다면 누구나 자기 몫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그녀가 얼른 사라져 주었으면 싶었다. '안정'을 나는 바랐고, 지하에 혼자 남길 바랐다. '살아 있는 삶'이 너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이제는 그것이 숨이 막힐 만큼 나를 짓눌러 왔다.

 

그녀가 지금 이 모욕을 영원토록 간직한다면, 그게 차라리 더 낫지 않겠는가? 모욕이란 원래 정화작용이니까. 그것은 가장 통렬하고 뼈아픈 의식이니까!

 

실상 우리는 '살아 있는 삶'을 노동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거의 업무로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다들 속으론 책에 따라 사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는 쪽에 동의한다.

 

3. 소감

토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소설과 확실히 달랐다. 낯설었다. 

 

                      2014. 2. 8.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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