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이방인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12. 13. 20:05

1. 개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저자는 알제리에서 태어났고,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반항적 인간>에서 '나는 마르크스에게서 자유를 배우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고 한 바 있다. 카뮈가 1940년 <이방인>을 탈고하였다.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나 <반항적 인간>을 통해 인간의 존재가 인간조건에 얽매여 있어 그곳에서 헤어나려는 끊임없는 노력(즉 반항)이며, 끝내 거기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허망한 존재며, 반항을 되풀이하는 희망 없어 보이는 존재이면서 바로 그 되풀이되는 노력이 인간의 삶이고 보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뫼르소는 친구 레이몽을 습격한 아랍인 행 중의 한명에게 권총을 쏘아 죽인 죄로 재판을 받는다.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기 얼마 전에 참석한 어머니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고, 어머니 나이를 잘 몰랐던 일, 어머니 장례식 직후 여자 친구 마리를 만나 희극영화를 보고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이 불리한 양형요소로 작용하여 사형을 선고받는다. 특히 그는 왜 죽였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라고 말하여 장내에 웃음이 일게 하였다.

 

2. 발췌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이 지난 다음에는 기정사실이 되어 모든 것은 보다 공적인 격식을 갖추게 될 것이다.

 

양로원으로 들어가고 난 처음 며칠 동안은 가끔 우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성 때문이었다.

 

나는 편지를 썼다. 되는 대로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이몽의 마음에 들도록 애썼다. 왜냐하면 나는 레이몽의 마음에 들지 않게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래 위로 바다는 잔 물결에 복받쳐 가쁜 숨결을 다하여 헐떡이고 있었다.

 

한낮은 벌써 두 시간 전부터 흐름을 멈추었고, 끓어오르는 금속 같은 태양에 닻을 내린 지도 두 시간이나 되었다.

 

이어서 나는 그 굳어진 몸뚱어리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어머니는 늘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사람이란 모르는 것에 관해서는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하늘이 빛을 띠어 새로운 하루가 내 감방으로 새어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죽는 바에야 어떻게 죽든 언제 죽든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상소의 각하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서 어머니는 해방감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긴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소감

살인의 동기에 관하여 뫼르소가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답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랍인이 뽑아든 칼이 태양광선에 반사되는 순간 총의 방아쇠를 당겼으므로 정당방위다라고 주장한 것일까? 아니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일까? 어쨌거나 주인공 뫼르소는 관습을 뿌리치고 살기를 택한 인간으로 허망한 인간의 전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관습에 따라 사는 내가 그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13. 12. 13.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리오영감을 읽고  (0) 2014.01.28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0) 2014.01.24
폭풍의 언덕을 읽고  (0) 2013.12.02
학대받은 사람들을 읽고  (0) 2013.11.04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0) 2013.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