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7. 5. 19:19

1. 2013 이상문학상

2013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대상을 차지한 작가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를 비롯하여 대상후보에 오른 8편의 소설, 작가 김애란에 관한 작가론과 작품론이 실려 있다. 김애란의 소설은 모두 말하는 사람 혹은 이야기꾼의 탄생과 성장의 이야기, 그리고 그 말 속에 자신을 어떻게든 기입해놓고 떠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 침묵의 미래>는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생성과 사멸의 과정을 인간 자신의 운명처럼 그려내고 있는 일종의 관념소설 형태를 취하고 있다. 소수언어박물관에서 한 언어의 마지막 화자로서 전시되다가 숨을 거둔 한 노인의 마지막 순간을 증언한다. 노인을 떠나보내면서 스스로도 죽음을 맞게 되는 이 언어는 흡진장치에 의해 다시 수집되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자원으로 재활용되기 위해 공장으로 끌려간다.

 

2. 인용

중앙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세계 곳곳의 언어를 보호하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반대였다. 그리고 그건 중앙에서 내심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어주었다.

 

<호모 사케르>로 유명한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몇 년 전 <언어의 성사>라는 책에서 언어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聖事적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언어가 신성과 분리디고, 공동체 내의 약속과도 무관해지면서, 결국 껍데기만 남은 '빈말'이 횡행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역사적 통찰이다.

 

'작은 공동체'가 아닌 '큰 장치'들을 위한 언어, 효율적인 명령 전달을 위한 중앙언어만이 남고, 다른 군소언어들과 그 언어들이 하나씩 품고 있는 풍요로운 시적 세계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불쌍한 것은 죽기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굶어죽기 때문도 아니다. 아무 희망 없이 비참하게 살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인간이란 신념이 흔들릴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법인데, 자신에게는 애당초 흔들릴 신념조차 없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에게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만이 있다.

 

변화는 당연하지만 망각은 두려운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다만 놀랍고도 애석했다.

 

잊어야 하는 것과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잊혀지는 것과 잊혀지 않는 것의 간극에 무엇이 위치해 있는지. 그도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았다.

 

3. 소감

물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2013. 7. 5.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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