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마음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10. 3. 15:59

나쓰메 소세키 소설 <마음>, <꿈 열흘 밤>을 읽었다. 저자는 1868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으며 1916년 사망하였다. 현재 일본의 1,000엔 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일 정도로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마음>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가로채도록 만든 인간의 에고이즘 문제를 파헤친 작품으로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선생님'이 메이지 천황이 사망했을 때 천황을 따라 자살한 노기 장군에 자극을 받고 그러한 '메이지 정신'에 순사하겠다는 유서와 함께 자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몇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으라고 시키는 겁니다.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보다 외로운 현재의 나를 견뎌 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사람을 믿어 보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단 한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되어 줄 겁니까? 당신은 진짜로 진지한 겁니까?

 

작은 아버지한테 속은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한테 속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지향하는 곳만 높고 그 밖의 것이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결국 불구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를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나를 그를 인간답게 만드는 첫 번째 수단으로서 우선 이성 옆에 그를 앉히는 방법을 강구한 것입니다.

 

사실을 증류해 만들어 낸 이론 따위를 K의 귀에 집어넣으려고 하기보다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그의 눈 앞에 드러내는 편이 나한테는 훨씬 유익했겠지요

 

사건이 일어난 후 그때까지 우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나는 그제야 슬픈 기분에 휩싸일 수가 있었습니다. 내 가슴은 그 슬픔 때문에 얼마나 편안해졌는지 모릅니다. 고통과 공포에 꽉 사로잡힌 내 마음을 한 방울의 물로 적셔 준 것은 그 때의 슬픔이었습니다.

 

남을 신뢰할 수 없게 된 나는 자신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K는 바로 실연 때문에 죽은 거라고 금방 간주해버렸던 것입니다.....나는 결국 K가 나처럼 단 홀로 남겨져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돌연히 죽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율했습니다. 나도 K가 걸은 길을 K와 똑같이 걸어가고 있는 거라는 어떤 예감이 이따금 바람처럼 내 가슴을 스쳐 지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목숨으로 생각하고 세상을 살아가려고 결심한 나는 때때로 외부의 자극에 소스라쳐 놀라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방면인가로 나아가려고 하면 무서운 힘이 어딘가에서 나와 내 마음을 꽉 죄고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나를 낳은 나의 과거는 인간 경험의 일부분으로서 나 외에는 아무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거짓 없이 써서 남기는 내 노력은 인간을 아는 데 있어 당신한테도 다른 사람한테도 헛수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초 일본에 있지 아니 한 사람은 이 소설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와 에고를 획득한 대가로서 고독을 맛보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1. 10. 2. 진주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0) 2013.01.20
7년의 밤을 읽고  (0) 2012.01.16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읽고  (0) 2011.07.27
야만인을 기다리며  (0) 2011.07.18
사하라를 읽고  (0) 201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