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사하라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6. 23. 23:00

유중원 장편소설 <사하라>를 읽었다. 저자는 사법연수원을 같이 다닌 변호사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전에는 외환은행을 다녔고, 최근에는 국민대학교 법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리비아 사막에서 모래땅을 파고 송수관을 묻어 대수로를 만드는 공사현장에서 공정 관리와 감리를 책임지는 본부장 김현규가 가이드 이브라함와 함께 트럭을 타고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는 여행을 떠났다가 트럭이 고장나는 바람에 결국 사막에서 죽는다는 내용이다. 그 중간에 이브라함이 사하라 사막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민갔다가 다시 사하라 사막으로 돌아온 이야기, 김현규가 남도 지방에서 태어나 리비아 사막 공사현장으로 떠나기까지 이야기가 기억 형식으로 펼쳐진다. 죽어가는 순간에 김현규는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지만, 아내는 김현규의 아이를 낙태시킨 산부인과 의사와 함께 불륜을 저지르고 그 의사에게 결국 배신을 당한다. 

 

밑줄을 치며 읽었던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막에서 유일하게 귀중한 말은 침묵이다. 그곳에서 목소리는 언어가 되기 전에 먼저 침묵과 조우한다. 죽음 같은 침묵이 황량한 사막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낙타가 안 보인다고 해도 불안해하지 말라. 내일이면 나타날 것이다. 그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안 나타나면 그 다음다음 날에 나타날 것이다. 신의 뜻대로 될 것이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지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여행자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모험담을 마음대로 꾸미고 과장하여 이야기할 특권이 있다. 여행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신비스러운 체험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는 그런 종류의 여행담에 숙명처럼 으레껏 따라다니는 것이어서 듣는 사람에게 환상을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상 누구의 삶이든 인생이란 여정 역시 사막처럼 쉼 없이 걸어서 넘어야 하는 끝없는 모래언덕의 연속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막에서는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별을 따라가야 하는 거야.

 

우리는 여기 사막을 떠날 수 없어. 우리는 사막의 일부이고 사막은 우리의 일부일 뿐이야. 신이 곧 구원하러 오실 거야. / 아프리카의 비극을 보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지.

 

유목민이 일생을 통하여 사막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온통 모래와 자갈, 돌 뿐이다. 사막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꽃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곡선은 오직 여성의 신체이다. 사막에 꽃은 없다.

 

어머니는 평생을 가난에 시달렸으나 가난에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자들은 순례를 시작한 첫 날에 간소한 의례와 함께 맹세를 했다......너무 빠르게 너무 느리게 걷지 말 것이며, 언제나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가기를

 

소설을 읽고 나니 몇 가지 사실이 놀라웠다. 아는 사람이 소설을 썼다는 점이 놀라웠고, 사막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는 점이 놀라웠고, 아무 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는 사막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아니 하여 그런지 몰라도, 침묵을 통하여 인간은 비로소 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2011. 6. 23. 진주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읽고  (0) 2011.07.27
야만인을 기다리며  (0) 2011.07.18
말테의 수기를 읽고  (0) 2011.03.27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0) 2010.12.05
허수아비춤을 읽고  (0) 201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