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7. 27. 18:33

알프레트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읽었다. 저자는 독일에서 유대인 부모의 넷째 아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미국으로 애정 도피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데리고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프라이브르크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정신병원에서 일반의로 근무하였으며, 나중에 정신과, 내과 병원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번역자 김재혁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 경제공황 시기다. 어릴 적의 찢어지는 가난이 세계를 바라보는 저자 눈의 각도를 결정지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내적 독백이라든가 체험화법을 사용한다. 내적 독백이란 그냥 벙어리처럼 속으로 주절대는 거다. 주인공이 마음 속으로만 중얼댄다는 말이다. 보통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을 한다. 저자는 또한 현재적인 것, 응축되고 간결한 것을 즐겨 추구하고, 언어를 절약하여 사용하고, 표제어만 혼란스럽게 툭툭 던지는 것, 말해진 것처럼 할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처럼 한다. 암시적인 어법을 많이 사용한다. 직접 화법을 많이 쓴다. 저자는 작품을 통해 철학적 성찰을 해보고 싶어 한다. 인간 존재가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속에 사로 잡혀 있으니 슬플 수밖에 없다.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프는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괜히 허세를 부리다가 세 번에 걸쳐 운명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은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프. 그는 약혼녀 이다를 살해한 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출소 후에 신문팔이를 하다가 범죄에 관여하기도 하고 창녀 미체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다가 끝에는 미체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힌다(감옥에서 죽는 건지, 누명을 벗고 석방되는 건지가 애매하다). 미체는 주인공의 애인이면서 창녀이고 라인홀트의 유혹을 거절하다가  목이 졸려 살해된다. 에바는 한 때 주인공의 애인이었고 줄곧 창녀로 생활하면서 주인공을 후원한다, 라인홀트는 절도를 비롯한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패거리의 일원으로서 주인공을 차에서 밀어 한 팔을 절단하게 하기도 하고 미체를 살해한 다음 주인공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주변에서 갖가지 일상이 벌어지고 범죄가 진행된다.

 

몇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도 천사도 인간도 모두 너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너는 그걸 원치 않는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탄은 너를 나중에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천사와 인간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과 사탄의 조수이므로. 그러나 너는 그걸 원치 않는다.

 

절망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계속 전개해가면서, 그 쓰리고 놀랍고 아픈 결말부까지 나아가며 여러 번에 걸쳐 이 말을 사용할 것이다. 절망할 이유는 없다고.

 

프란츠는 계속해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뭘 원하는지 그 자신도 모른다.

 

상황은 이렇다. 이건 다 생각 속의 일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단 한가지, 라인홀트, 라인홀트가 저기 앉아 있다는 것이다.

 

프란츠 비버코프는 내리치는 망치를 고스란히 맞았다. 그는 자신이 패했음을 안다. 하지만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모른다.

 

그녀(미체)는 박살이 났다. 거기 있다가, 우연히 그 남자 옆에 있다가 그렇게 되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온갖 경험을 다하고 다양한 인생살이를 한 사람은 그저 뭔가 알고 싶어 하다가 그 다음엔 도피하거나 죽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네. 온갖 경험의 길을 통과해 오고 나니 이젠 지친 거야.

 

사람은 혼자 힘으로, 자신만을 통해서 강해지는 게 아니야. 뭔가 겪고 나서야 그렇게 되는 거지. 힘이라는 것은 획득하는 거야

 

라인홀트를 죽이지 못하니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나는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지옥으로 달려간다.

 

전쟁 통에 팔을 잃었지, 늘 전쟁이야. 살아 있는 한 전쟁은 그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두 다리로 서는 거야.

 

만약 하느님이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지닌 악함이나 선함 때문에 서로 구별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성품과 다른 생을 갖고 있다. 천성과 출생, 미래의 운명에 있어 우리는 서로 다르다.

 

진실한 죽음, 참된 죽음을 찾지 않고서. 너는 평생토록 네 목숨을 지켜 왔다. 지키는 것, 지키는 것, 그건 인간들의 끔찍한 욕망이다. 그래서 밤낮 그 욕망에만 집착하며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프란츠 비버코프는 테겔 형무소에서 나와 다시 세상에 홀로 섰을 때 이런 맹세를 했다. 나는 바르게 살련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불평일랑 집어치우고 가슴에 태양을 품게" 그는 그렇게 위로하며 사라졌다.

 

많은 경우 불행은 혼자 걸어갈 때 찾아온다. 사람이 여럿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나하고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내가 누구이며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낯선 소설이다. 저자는 간헐적으로 이야기가 사실임을 강조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독자가 결정하게 되겠지.

 

2011. 7. 27.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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