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12. 28. 10:21

1. 개괄

그레고리 헨더슨이 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를 읽었다. 서형작가가 추천한 책이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1948년 7월 주한 미국대사관에 처음 부임하여 1950년까지 문정관으로, 1958년부터 1963년까지 정치 담당 자문을 거쳤고, 1964년에서 1966년까지 하버드 대학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저자는 1968년에 구판을 출간하였고, 1988년에 신판을 출간하였는데, 이 책은 신판을 완역한 것이다. 그는 정치문화 관점에서 한국 정치를 통시적으로 분석하였는데, 키워드는 소용돌이 정치다. 소용돌이 정치란 원자화한 개체들이 권력의 정상을 향해 소용돌이의 상승기류를 타고 돌진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즉 촌락과 왕권만이 있을 뿐, 그 사이에 중간기구가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1980년대에 독자성을 가진 중간기구로서 노동세력과 재벌이 등장한 것을 두고 다원주의를 향한 권력분산이라고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정치의 발전방향은 다원화를 통한 응집이다.

 

2. 발췌

핸더슨은 동질성과 중앙집중화를 한국사회를 해석하는 열쇠로 삼았다. 그 결과 한국은 일종의 원자화한 사회가 되어 그 안에서 개인도 가족도 당파도 관료주의적 기류의 상승작용에 열광적으로 휩쓸려 빙빙 돌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새뮤얼 헌팅턴)

 

단일화의 긴 정치전통을 가진 동질문화가 자발적인 정치적 통일과 단결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거듭된 실패는, 잠재적 다수파를 굴욕적으로 패배한 소수파로 전락시켜 다수의지의 표명, 나아가서는 민주주의의 표명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내우외환을 맞아 보여주는 정치적 응집력의 부족은 한국의 역사를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전염병처럼 반복되었다.

 

집단을 만들어내는 것은 파당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파당으로부터 실질적인 정당을 벼려내는 토론과 관심은 동질적이고 한국과 같이 권력지향적인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세계 다른 많은 나라에 있는, 창의적이고 근대화 감각이 뛰어난 소수민족이 없다. 보호해야 할 소수파가 없다는 것은 권리를 옹호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며 혁신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자극이 없다는 것이 된다.

 

많은 독재자들이 곧잘 사용했고 훗날 이승만 대통령도 즐겨 이용했던 이러한 방법으로 흥선대원군은 아랫사람들이 횡적인 연결을 갖지 않는 종적인 충성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10년에 걸친 개인 독재체제를 유지했다.

 

민주적 제도를 이식하려던 시도는 조직적 노력이 아닌, 겉으로 흉내만 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대로부터 바다에 비는 꾸준히 내렸지만 아직도 바다는 소금물이었다.

 

한국 대중사회가 질서와 결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 민주당 정권의 단명이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음은 분명하다......단합이 안 되면 대가를 크게 치를 거이라고 신문에서 매일 경고했지만, 결국 야당은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복수의 후보자를 냄으로써 사실상 자살행위를 한 셈이 되었다.

 

법치의 취약성이 이런 과정을 심화시켰다. 법전과 집행기관이 중요성과 신뢰성을 가질 때만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 아래 어디서나 상거래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 밑바닥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사다리를 제공했다. 한동안 교회는 유일한 정치적 결집요소였다.

 

장기적으로 응집력이 꽃피려면 소용돌이를 분산시킬 수 있는 권력의 다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원화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현대화 조치일 것이다.

 

한국사회가 실체가 독특한 것처럼 한국의 정당들은 대부분이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결성한, 유동적이고 뿌리 없는 집단이었다. 그들 정당은 원자화하고 응집력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다른 집단들과 대동소이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선을 위한 이익단체나 압력단체의 개념이 거의 없었다./일반적으로 사회적 선은 유덕한 개인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믿었다.

 

한국의 정당이 조정이 아닌 병합이라는 특징을 보여준 것은 정당의 기능이 선거에서 선출된 개인을 위해 권력접근의 채널 역할을 한다는 의미였다.

 

소용돌이 구조의 제반 요소가 과거에 근대화를 저해하고 있었던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에 다양성은 진보와 치유의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다. 다양성이 그렇게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한다면 다양한 여러 조직이 이 기능을 수행할 충성심과 통합성을 발전시키고 이에 따라 代議性이 생겨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소용돌이 구조의 문제는 분권화를 진행시켜 중앙집권적 권력에 대한 대체권력을 창출해야만 해결될 수 있다. 대책을 강구하려면 다원화사회를 실현해 나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현재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많은 행정권한은 지방정부에 단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양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예산과 경찰권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1963년 선거에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야당 지도자들과 핵심 집단들의 자멸적인 싸움은 1967년과 1985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정쟁은 이성적인 토의와 타협의 결과 당의 정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쟁점과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투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한국은 대기업의 성공으로 현재 중앙 내지 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가치와 사업을 대체 세력 집단들에게 서서히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3. 소감

저자의 주장 중에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수긍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한국정치의 발전방향이 '다원화를 통한 응집'이라는 데는 전적으로 돋의한다. 다원화와 응집은 언뜻 모순 되어 보이지만, 토론과 타협의 과정을 거친 결정에 승복하는 정치문화를 이룬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988년 이후 2013년까지 한국정치를 관찰했다면 저자는 기존의 주장을 고수할까? 수정할까?

 

                         2013. 12. 2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