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10. 29. 19:55

1. 개괄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었다. 저자는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로서 1971년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이 책은 4부로 되어 있는데, 1부 우리는 오늘날 정확히 얼마나 불펻등한가, 2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3부 새빨간 거짓말, 그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 4부 말과 행위 사이의 간극이다.

 

2. 발췌

생존과 만족스러운 삶에 필요한 물건들이 갈수록 희소해지고 손에 넣기가 어려워지면서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빈자들 간의 살벌한 경쟁의 대상, 아니 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자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미국의회예산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부의 총합은 하위 90퍼센트의 부의 총합보다 2조 달러나 많은 16조 8000억 달러에 달했다.

 

불평등은 경제를 끌어올리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운명'은 현실적 선택지들의 범위를 결정하지만, 그 범위 내에서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인격이다.

 

탐욕은 악덕이고, 고리대금은 악행이며, 돈에 대한 사랑은 혐오스럽다....우리는 언젠가는 수단보다는 목적을 중시하고 유용한 것보다는 선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존 케인스).

 

계층상승의 사다리는 오늘날 점점 더 통과할 수 없는 수많은 격자들과 넘을 수 없는 장벽들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제성장'은 소수에게는 부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수많은 대중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급격한 추락을 의미한다.

 

요컨대 무어는 '정의'를 '부정의'의 구체적 사례의 부정으로 본다....어느 경우든 '정상적' 혹은 '자연적'이라고 생각해왔던 계층구조에서 자기들에게 일어난 불리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상대적 박탈의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이제 사회적 불평등의 행진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질적으로 작가란 말의 상태에 대한 직업적 책임을 다할 경우에, 오직 그럴 경우에만 '진짜' 작가이다. 작가를 '진짜' 작가로 만드는 것은 현실에 대한 말의 영향력이다. 카네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하고 말의 실패에 속죄를 하고자 하는 갈망'이다.

 

탐욕은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으며, 누구의 탐욕이건 유익하지 않다.

 

3. 소감

저자는 문제점은 지적하지만 '탐욕에는 유익한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할 뿐 구체적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책의 부제도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2013. 10. 29.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