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읽었다. 저자는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이고, <피로사회>라는 베스트셀러로 주목받고 있는 문화비평가다. 이 책은 진정한 안식을 모르는 현대인을 위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시간의 위기를 초래한 조작 가능성의 세계관과 활동적 삶의 절대화를 비판한다. 그가 활동적 삶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사색적 삶이다.
2. 발췌
오늘날의 피로사회는 시간 자체를 인질로 잡고 있다. 이 사회는 시간을 일에 묶어두고, 시간을 곧 일의 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일의 시간은 향기가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일의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이 없다.
니체는 최후의 시간을 다음과 같이 성격 짓는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고, 모두가 동일하다. 다르게 느끼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정신병자 수용소에 들어간다"
경험의 주체는 결코 자기 자신과 동일한 상태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거처는 지나간 것과 앞으로 올 것 사이에 있다. 경험은 넓은 시공간을 포괄한다. 경험은 매우 강렬한 시간적 성격을 지니며, 이 점에서 순간적이고 시간적으로 빈약한 체험과 대비된다.
죽음은 인생 밖에서 와서 인생을 불시에 종결시키는 폭력이다. 인간은 불시에 때 이른 끝장을 맞이한다. 죽음이 인생, 삶의 시간 자체에서 노출되는 결말이라면, 폭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종결이 있을 때만 인간은 삶을 스스로 마지막까지 제때에 죽을 수 있다.
가속회의 테제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 삶이 의미 있게 완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삶이 분주하고 초조해진 원인이다.
전자우편에는 발송지를 알려주는 식별 표지가 없다. 전자우편은 무공간적이다. 현대적 기술은 인간의 삶을 땅에서 소외시킨다.
모든 것은 없거나 지금 여기 있거나 둘 중의 하나다. 더 이상 사이의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란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생은 모든 사이가 제거되고 나면 그만큼 더 빈곤해진다. 인간의 문화에도 사이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지속성을 위한 프루스트의 전략은 시간을 향기롭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이 역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인간이 삶의 여정을 따른다는 것이 전제된다. 시간의 향기는 이 세상 속의 향기다.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그가 항상 시간이 있는 것은 시간이 곧 자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사색적 시선은 거리의 제거와 사물의 동화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금욕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따른다면 인간 실존의 본질은 근심이 아니라 한가로움일 것이다. 사색적인 평온함은 절대적으로 우선시된다. 모든 활동은 이 평온함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고, 결국 그것으로 귀착되어야 한다.
바로 테오레인, 진리에 대한 사색적 고찰로서의 사유가 한가로움의 바탕을 이룬다.
행동을 향한 결연한 의지는 머뭇거릴 줄 모르는 한 맹목적이다.
더 많은 활동이 아니라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이 행동을 노동과 다른 것으로 만든다. 머뭇거릴 줄 모르는 사람은 노동자일 뿐이다.
인간이 그래도 동물 이상의 존재인 것은 바로 사색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색하는 능력을 통해서 인간은 지속적인 것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행동없는 사색적 삶은 공허하고, 사색 없는 행동은 맹목이다.
3. 소감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2013. 5. 9.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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