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말의 가격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2. 6. 30. 17:25

1. 개괄

앙드레 쉬프랭 <말의 가격>을 읽었다. 저자는 30여년 간 미국 판테온 출판사를 이끌면서 유럽의 대표적 지식인을 미국에 소개하는 일에 주력했다. 1990년 비영리 법인 뉴 프레스를 설립하여 대표적인 인문 사회과학 출판사로 키워냈다.  이 책은 돈에 갇힌 미디어와 언론을 구해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2. 발췌

현 시대의 경제 위기로 인해, 실제 만질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상적 활동을 통해서는 아주 큰 돈을 벌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추상적 상품을 거래하는 이들이 올리는 엄청난 이윤을 보며, 전통적 투자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반스앤노블과 보더스 두 서점 체인이 모두 확실한 판매를 보장하지 못한 책을 극도로 기피해, 이런 운 나쁜 책들을 가능한 한 확실하게 반품시키다 보니, 출판사의 반품 비율이 기록적으로 높아졌다.

 

전통적인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다양하고 독립적인 문화 보존의 방법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게 내 주장이다.

 

프랑스도서협회 재원의 상당 부분이 저작권이 있는 서적의 복사비로부터 마련되는데, 재원의 일부가 소규모 출판사에 대한 영구적 지원금으로 손쉽게 지정될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도서관에 배부하기 위해 매년 정해진 수량의 책을 구입하는 것은, 독자가 새로운 중요한 책을 더욱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간접적으로 출판사를 도와주는 확실한 방법이다.

 

노르웨이들은 다양한 언론이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점에 오랫동안 동의해 왔다. 그에 따라 정부는 소규모 신문사들을 어느 정도 지원해준다.

 

1945년에 맨해튼에는 모두 합해 333개의 서점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서점 체인을 포함해 대략 30개밖에 없다. 높은 임대료가 하나의 요인이다. 다른 더 중요한 원인은 프랑스에서처럼 도서 가격의 할인을 금지하는 법인 루아 랑 같은 게 전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게도 서점 체인들은 경쟁자인 독립 서점 바로 옆에다 가게를 마련해 놓고는 아주 낮은 가격으로 책을 팔아 경쟁 상대를 점차 망하게 만든 다음, 다시 정가를 올렸다.

 

문화 영역에서 자유시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요 결정은 국가 차원이든 지역 차원이든 늘 정치적이다.

 

미국의 저녁 뉴스 프로그램의 시정차 역시 연로해지는 동시에 줄어들었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인쇄 신문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음은 분명하다. 이는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며, 단지 인터넷과의 경쟁 탓도 아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장기간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신문이 좀 더 빠르게 경각심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 세계 상위 100대 일간지 중 74개가 아시아에서 발생되며, 이들 일간지의 2007년도 총 판매부수도 2,600만 부 정도 증가하였다.

 

역시 중요한 신문의 다른 약점은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전반적 무능력이다. 시장이 아주 위험한 궁지에 들어섰다고 지적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 경제학자들은 여러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경청되지 않았다. 시장은 어떠한 잘못도 저지를 수 없다고 고집하는 프리드먼의 사상이 대학에서처럼 신문업계에도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웹은 또한 신문이 무시하거나 보도하길 두려워하는 사실을 알리는 데 소중한 매체였다. 시민 행동을 위한 웹의 활용 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오랫동안 방송이 지속적으로 국가의 주요한 자원인 공중파를 사용하는 대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를 지녀왔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 인터넷 사용자들이 2008년 온라인에서 신문을 읽기 위해 1주일에 53분을 쓴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발상은 실제로 프랑스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퀘스트 프랑스>의 시도를 토대로 했다. 이 신문은 젊은 독자들에게 1년 동안의 무료 구독권을 주었는데 이 중 15%가 1년 후에도 자비로 신문을 계속 구독하기로 선택하여, 신문사를 기쁘게 한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를 비롯한 몇 사람이 썼듯, 매스미디어로부터 상당수 지성적 담화가 사라진 정확한 이유는 광고주들을 위해 시청자를 최대화해야 하는 압력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구글의 이익이나 광고 수익에 세금이 매겨져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돈을 구글의 웹페이지를 장식하고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역할을 하는 신문사에게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3. 소감

크다고 다 위대한 것은 아니다. 독립적이고 다양한 문화 매체들이 공존할 때 사회는 성숙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를 위해서 공적인 재원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

 

                 2012. 6. 3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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