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2. 7. 17. 21:39

1. 개괄

피터 L. 버거의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읽었다. 저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사회학자로 현존하는 20세기 사회사상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자가 평생 걸어온 지적 여정을 되돌아보는 책이다.

 

2. 발췌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사회에 관해 많이 알 수 있으니까.

 

사회학의 분석적인 부분은 당연히 '가치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제 적용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사회는 허구의 구조물이다. 이런 허구들은 사회가 개개인에게 배정하는 역할 속에서 구현된다. 개인은 자기가 하는 역할을 사회화의 결과로 여기기 때문에 그 허구들은 도덕적인 알리바이가 된다......사형을 선고하는 판사는 한 개인으로서 그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자신은 법의 대리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결국 한 인간이 죽임을 당하는 데 죽이는 자는 없는 것이다. 종교는 이런 일에 긍극적인 정당성을 제공함으로써 이 살인극에 동참할 수 있다.

 

그렇게 종교는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바꾼다. 그래서 이제는 사회라는 것이 마치 우주의 궁극적 질서 내에 난공불락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나는 새로운 발전 정책 모델은 내놓지 못했다. 대신 내가 고통의 계산과 의미의 계산이라고 한 것을 좀 더 상세히 기술했다. 이는 수용할 만한 발전모델이라면 사회 변화가 야기할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또한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적 가치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근대 세계의 특징은, 여기저기 몇 군데 예외가 있긴 하지만, 세속화가 아니라 다원성이라고 주장했다. 즉 근대 세계는 종교가 너무 적은 게 아니라 지나치게 많다.......근대성이 반드시 세속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다원화한다.....나는 사실상 다양한 윤리적 종교적 집단들이 한 사회 내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상호작용하는 다원주의야말로 근대성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사회학자인 슈무엘 아이젠슈타트가 다중근대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근대화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는, 근대화가 반드시 서구화와 같은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 나는 차차 그 문제에서 일본을 가장 중요한 사례로 보게 되었다.

 

중재 구조들이 없다면 개인은 사회 질서를 이질적인 것으로, 한발 더 나아가 적대적인 것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고, 거대 사회 제도들, 특히 국가는 개인의 삶을 지탱해주는 가치들로부터 멀어져 그 정당상을 결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제도들 네 가지를 논했다. 가족, 이웃, 교회, 자발적 단체.

 

금연 운동은 가장 성공한 사회 운동이었다......특히 사회 운동이 성공하려면 이데올로기와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결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객관성이란 사회과학자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할 때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전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베버의 용어로 말하자면, 과학이라면 모름지기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가치 중립적 과학자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덕적으로는 괴물일 것이다.

 

도덕적 판단이란 명령이 아니라 보고 깨닫는 데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즉 이건 하고 저건 하지 말라는 정언 명령이 아니라 이것 좀 봐! 하고 보고 깨닫는 데에 근거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행위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상대적이다.

 

우리는 중용의 정치라는 것을 제안했다. 중용의 정치는 의심과 확신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말하자면 불안정한 비전에)에 의존한다. 모든 집단적인 행동 정책에 회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정치적 덕목이다......중용의 정치는 폭넓은 의심과 (어쩔 수 없이 극히 드문) 도덕적 확신 사이의 균형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소감

어쩌다 실수로 사회학자가 되었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았다.

 

          2012. 7. 17.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정치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긍정의 배신을 읽고  (0) 2012.08.17
법은 왜 부조리한가를 읽고  (0) 2012.07.24
노동의 배신을 읽고  (0) 2012.07.08
말의 가격을 읽고  (0) 2012.06.30
사물의 민낯을 읽고  (0) 201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