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서양미술사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2. 6. 17. 18:14

1. 개괄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읽었다. 저자는 빈에서 태어나 런던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 책은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오늘날 실험적 예술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에 관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룬 입문서다.  400개 이상의 작품 사진이 붙어 있다. 매우 작은 글씨로 636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다. 

 

2. 발췌

위대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다. 친숙하게 알고 있는 주제를 뜻밖의 방법으로 표현한 그림을 대했을 때 그것이 정확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하곤 한다.

 

사실상 어떤 시기의 일부 미술가나 비평가들이 그들의  미술의 법칙을 공식화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즉 신통치 않은 미술가들은 이러한 법칙을 적용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반면에 위대한 대가들은 그러한 법칙을 깨뜨리면서도 이전에도 아무것도 생각조차 못했던 그런 새로운 형태의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에 관해서 속물근성을 조성하는 설익은 지식을 갖는 것보다는 미술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훨씬 좋다.

 

우리의 것과 다른 것은 그들의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그들의 착상인 것이다. 처음부터 이것을 깨닫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미술가들에게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전함이었다.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미술가의 과업이었다.

 

사실 고대 세계의 거의 모든 유명한 조각 작품들이 없어진 직접적인 이유는 기독교가 승리한 뒤로 이교도의 신성은 어느 것이나 때려부수는 것이 신성한 의무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물이 멀어짐에 따라서 대상의 크기를 일정하게 줄여가는 방법이나 오늘날 우리가 하나의 조망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구도의 틀을 고전 시대 사람들은 채택하지 못했다. 사실 그것이 적용되기까지는 천여 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렸다.

 

중국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천한 일로 생각하지 않고 화가를 영감을 받은 시인과 동등한 위치에 놓은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이집트인들은 대체로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중세에는 우리가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초상화는 없었다. 모든 미술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인습적인 인물상을 하나 그리고 직함을 나타내는 표상 즉 왕에게는 왕관과 홀, 주교에게는 주교관이나 홀장 등을 그려넣고 보는 사람이 잘못 알아보지 않도록 초상 아래 쪽에 이름을 써넣었다.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술의 영역에 있어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견으로 그 뒤 수백 년 간 미술을 지배했던 원근법의 발견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라파엘로는 자신이 어떤 점에서는 불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레오나르도와 같은 광범위한 지식을 갖지 못했고 또 미켈란젤로와 같은 정력도 없었다. 라파엘로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후원자들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 더욱이 그는 이 선배 거장들 따라잡을 때까지 쉬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다.

 

여기는

생전에 어머니 자연이

그에게 정복될까

두려워 떨게 만든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하노라

(라파엘로의 묘비)

 

그 당시 젊은 미술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의 유행에 휩싸여 단순히 그의 수법(manner)만을 모방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보는 후대의 비평가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매너리즘(Mannerism) 시대라고 불렀다.

 

북유럽에서는 회화가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심각한 문제와 부딪치고 있었다. 이 커다란 위기는 종교개혁에 의해서 초래되었다. 많은 신교 교도들은 교회 안의 성인들의 그림과 조각상을 두는 것을 반대하고 그것을 구교의 우상 숭배로 간주했다. 

 

미술이나 자연은 결코 거울처럼 매끄럽고 차가운 것은 아니다. 미술에 반영된 자연은 언제나 미술가 자신의 마음, 즉 그의 취향이나 기분을 반영한다.

 

17세기 화가들이 가시적인 세계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모색했던 것은 중요한 주제가 없이도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이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래서 동일한 종류의 주제만을 평생동안 그린 네덜란드의 전문 화가들은 결국 주제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쿠르베는 오직 자연의 제자이기를 원했다. 어떤 면에서 그의 개성과 방식은 카라바조와 유사했다. 즉 그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을 원했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회화는 반드시 바로 그 현장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모네의 생각은 오래된 습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안이한 제작 방법을 거부한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기법상 새로운 방법들을 발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사람들이 세계를 좀더 다른 시각으로  보도록 도와준 두 조력자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인상주의자들의 승리가 그처럼 빠르고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1) 사진술 (2) 일본의 채색 목판화

 

사진술의 발달은 미술가들로 하여금 더 심도있는 탐색과 실험이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기계 장치가 더 훌륭하고 값싸게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굳이 그림으로 그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반 고흐는 돈 많은 감식가의 마음만을 만족시키는 세련된 예술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쁨과 위안으로 채워줄 수 있는 소박한 예술을 갈망했다.

 

반 고흐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형태를 왜곡시켰다.

 

반 고흐는 인상주의가 시각적 인상에만 집착하여 빛과 색의 광합적 성질만을 탐구한 나머지 미술이 강렬한 정열을 상실하게 될 위험애 처했다고 느꼈다.....고갱은 보다 단순하고 보다 솔직한 어떤 것을 열망했고 그것을 원시인 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뭉크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을 것이다. 고뇌의 외침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인생의 즐거운 면만을 보려는 것은 불성실한 태도라고. 표현주의자들은 인간의 고통, 가난, 폭력, 격정에 대해 아무 예민하게 느꼈기에 미술에서 조화나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정직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했다.

 

휘슬러는 그의 어머니 초상을 회색과 검정색의 구성이라고 제목을 붙임으로써 화가들에게 있어서 주제란 단지 색과 디자인의 균형을 연구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과시했다.

 

그들의 관심이 과거처럼 주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처럼 형태에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추구하는 작품은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일까?......굳이 말로 설명해야 한다면 현대 미술가들은 사물을 창조하고자 한다는 것이 그 해답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초현실주의자들은 깨어 있는 사고가 마비되면 우리들 내부에 숨어 있는 유아성과 야만성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힌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저작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그들은 이성이 과학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인정하나  비이성만이 우리들에게 예술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형태와 색채가 제로가 될 때까지 그것을 조화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기는 하지만 어중간한 해결방식에 머물지 않고 모든 안이한 효과와 피상적인 성공을 뛰어넘어 진정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따르는 노고와 고뇌를 기꺼이 감내하는 뛰어난 남녀들이다.

 

미술은 다른 창조 형태와는 달리 매개수단에 덜 의존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회화야말로 이 모든 예술 형태 중 가장 급진적인 혁신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3. 소감

전공과 관계없는 이런 책을 왜 읽냐는 질문을 받는다. 인간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다 법률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며 공동체의 관계망을 이해하는 데는 다른 과목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게 다음과 같은 지식을 제공했다. 미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다.

 

                                    2012. 6. 17.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