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삶을 바꾼 만남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2. 1. 14. 12:28

1. 개괄

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을 읽었다. 저자는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다. 이 책은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단연 황상이다. 그는 열다섯에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스승 정약용을 처음 만난 이후, 죽을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스승을 모셨다. 그 인연은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연이 죽을 때까지 신분을 넘어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그것이 시를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놀랍다. 시를 통하여 한 인간의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다. 곳곳에 추사 김정희, 초의 선사 등 유명인사가 등장한다.

 

2. 발췌

궁함을 안 뒤라야 저서할 수 있음을 비로소 알겠더구나. 반드시 지극히 총명한 인사가 곤공한 지경을 만나, 하루 종일 흙덩어리처럼 앉아서 사람 말소리나 수레나 발자국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 않게 한 뒤에야, 경전과 예학의 정밀한 뜻을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1)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2)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3)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 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이러저리 궁리하고 살펴 따져 깊은 뜻을 얻는다고 해도, 떠오로는 대로 메모하고 기록해야만 실제로 네

것이 된다. 그저 소리 내서 읽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양반 체모만 따져 가만히 앉아 가족을 굶기지 말고, 원포를 경영하여 생계의 도리를 찾으라고 강조했다. 자기만 먹지 않고, 남는 것을 내다 팔아 생활비로 쓴다......생활을 꾀하는 방법은 밤낮으로 궁리해봐도 뽕나무 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구나

 

다산은 무슨 공부를 하든,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게 했다. 공부는 기록을 통해서만 누적되어 이전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도 그렇게 했고, 제자와 자식들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했다.

 

사물을 바루어서 앎에 도달하는 공부가 격물치지다.

 

인생에서 귀한 것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세. 어찌 꼭 얼굴을 맞대면해야만 하겠는가?

 

재주 많은 자는 반드시 삼가고 두터움이 없는데, 그 지은 글을 살펴보니 경박하고 안일한 태도는 조금도 없더군.

 

병이 위독한 사람은 정작 자기가 병든 줄을 알지 못한다. 자기 입으로 병들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병이 그다지 심한 것이 아니다.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친 것을 알지 못한다.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는 자는 가짜로 미친 것이다. 사특하고 음란하며 놀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이 나쁜 줄을 모르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그 나쁜 점을 혹 고칠 수가 있다.

 

淸福은 욕심을 지우고 마음을 닦아 맑게 살다 가는 삶이다.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거두고, 자연 속에서 내면을 응시한다.

 

사람에게 귀한 것은 무엇이냐? 바로 신의다. 무리지어 함께 즐거워하다가 흩어져 서로 잊는다면 금수와 다를 게 없겠지.

 

스승이 세상을 뜬 지 10년째이던 1845년 봄, 황상은 마침내 벼르던 두번째 상경 길에 올랐다.

 

1853년 9월, 황상은 오래 벼르던 끝에 가을걷이를 끝내자마자 네번째 상경을 결행했다. 그는 허리가 굽은 예순여섯의 노인이었다......황상은 이튿날 날이 밝자 바로 집 뒤편 스승의 산소로 올라가 두 번 절하고 눈물을 흘렸다. 스승의 무덤 앞에만 서면 눈물이 절로 났다.

 

일속산방은 좁쌀 한톨, 또는 겨자씨 한 알만큼 작아도 그 안에는 광대무변의 세계가 펼쳐진다......놀랍게도 황상은 그 코딱지만 한 방 안에 세계지도를 붙여두고 있었다.

 

3. 소감

나에게도 이런 스승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김장하 선생을 만난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선생의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다. 그분은 나에게 대학교까지 장학금을 주셨지만 내가 받은 것은 가르침이었다.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경상남도에 기증한 일, 경상대학교에 남명 조식선생을 기념하는 남명관을 짓는 데 기여한 일, 형평운동 기념사업회를 꾸린 일, 진주신문 운영에 기여한 일, 야권단일후보로 진주시장에 출마하라는 집요한 요구를 단호하게 뿌리친 일, 평생 승용차를 소유한 적이 없고 골프도 치지 않는 분, 진주지원장으로 부임했으니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하여도 공직자와 식사하는 게 불편하다며 거절하는 분.......

내 삶이 헛되지 않다면 그 이유는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2012. 1. 14.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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