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지리산행복학교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8. 10. 08:00

<공지영의 지리산행복학교>를 읽었다. 하동군수님을 비롯한 여러분이 추천하였다. 작가가 쓴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은 적이 있다. 특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제도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지리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 시의 바탕이 슬픔인데 여기 지리산에 온 이후로 그게 자꾸 없어져.....기쁘고 행복한데 어떤 놈이 시를 쓰겠냐고

 

도시의 잘나간다는 직장을 다니다가 어느 날,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나?" 생각했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너무도 쉬운 깨달음"을 얻고 산골로 들어왔다는 버들치 시인

 

우리의 욕망은 너무도 획일적이다. 좋은 학벌, 많은 돈, 넒은 집. 우리는 이제 다양하게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때 나는 배웠다.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돌려줌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만 치유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소유와 자유는 철저하게 반비례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깨닫곤 했다.

 

수경스님이 삼보일배하는 것도 L선배가 섬진강가에서 헤매는 것도 다 사랑이야. 네가 보기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이곳에 온 지 10년, 무엇이 변했는지 한번 돌아보았죠......서울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에요.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낙장불입 시인=이원규/ 시 일부)

 

책을 읽고 나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삶의 구호가 '속세에서 청산으로가 아니라 속세를 청산으로'였다. 속세는 그대로 두고 청산으로 떠나는 것보다 더디지만 속세를 청산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다. 그렇지만 법을 지키고 반칙하지 아니 하며, 여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소득의 3% 정도는 남에게 기부하며, 봉사단체에 가입하여 이웃 사람과 정을 나누고, 자녀에게 억지로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삶은 지금 여기에서도 할 수 있지 아니할까? 

 

         2011. 8. 10. 진주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