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6. 26. 09:59

1999. 7. 13. 읽은 버트란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었다. 당시 책 뒤 여백에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여가의 현명한 이용, 사색하는 습관'을 적어 두었다. 한번 더 음미해 보고 싶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일이다.

 

여가란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다수의 노동이 있어야만 소수의 여가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수의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일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여가가 좋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정하게 여가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기술은 만인을 위한 생활필수품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을 엄청나게 줄였다.

 

만일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여가의 좋은 점은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게 된 평범한 남녀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고,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모두가 장시간의 가혹한 노동을 해야 할 것이므로 전쟁 취미도 사라질 것이다.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펠레스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히 푸른 것은 오직 생명의 나무'라고 젊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괴테의 소견인 양 인용하곤 한다. 사실, 괴테는 악마가 학생들에게 할 법한 얘기를 상상해본 것뿐인데 말이다.

 

획일성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전적으로 좋다거나 전적으로 나쁘다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는 단점도 있고 장점도 있다. 최고의 장점은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단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수를 박해하는 경향을 만든다는 점이다. 후자의 결점은 아마도 일시적일 것이다. 조만간 소수들이란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 둘 다(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모두 반대한다......공산주의자들의 목표는 전반적으로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다만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수단이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의 경우 나는 그들의 수단 못지않게 목표까지도 증오한다.

 

버트란드의 글은 언제나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며 명쾌하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나로 하여금 버트란드 러셀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2011. 6. 26.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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