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침묵의 세계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1. 6. 14. 23:00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를 읽었다. 어느 책에서 건축가 승효상님이 추천하는 것을 읽고 선택하였다. 저자는 1888년 독일 슈바르츠발트 지방에서 태어나 뮌헨에서 개업한 의사다. 오래토록 음미해보고 싶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쾨테의 일기 중)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하이데거)

 

저자가 이 책에서 찬양하는 침묵은 '일체의 지성을 초월하는 평화' 바로 그것이다(가브리엘 마르셀)

 

말이 끝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된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뿐이다.

 

인간은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말이다. 말이 침묵에 대해서 우월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은 침묵과의 관련을 잃으면 위축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 은폐되어 있는 침묵의 세계는 다시 분명하게 드러내어져야 한다. 침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을 위해서.

 

침묵은 오늘날 아무런 "효용성도 없는" 유일한 현상이다. 침묵은 오늘날의 효용의 세계에는 맞지 않는다. 침묵은 다만 존재할 뿐 아무런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모든 것들"보다는 침묵에서 더 많은 도움과 치유력이 나온다.

 

말은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

 

마치 말이란 다만 침묵을 뒤집어놓은 것, 즉 침묵의 이면일 뿐이라는 것처럼, 그리고 사실상 그것 - 침묵의 이면 - 이 말인 것이다. 말의 이면이 침묵인 것처럼.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에는 언제나 제삼자가 있다. 즉 침묵이 귀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침묵은 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말에게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말은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한다.

 

침묵 속에서 진리는 수동적이다. 진리는 침묵 속에서 잠들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말 속에서 진리는 깨어 있고, 말 속에서 진리와 허위에 대한 능동적 결단이 내려진다.

 

진리의 말을 위해서는 침묵과의 연관이 꼭 필요하다. 그러한 연관 없이는 진리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울은 인간의 말 대부분을 침묵과 분리시킴으로써 말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침묵의 제거는 인간의 내부에서 하나의 죄책감으로 존재하고, 그 죄책감이 우울로 나타난다.

 

위대한 문체 속에서는 침묵이 대개 중요한 공간을 차지한다. 타키투스의 문체 속에서는 침묵이 지배적이다(에르네스트 엘로)

 

우리는 침묵을 신들로부터 배우고, 말을 인간들로부터 배운다(플루타르코스)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경청하는 사람 또한 없다

 

라디오가 침묵의 모든 영역을 점령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혹은 책을 읽을 때 진실이 어떤 일회적인 것, 따라서 인격적인 것으로서 나타난다. 그와는 달리 라디오를 통해서 인간에게 내던져지는 인식은 기계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침묵을 상실한 인간은 그 침묵과 함께 단지 한 특성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자신의 전체적인 구조까지도 변해버렸다.

 

인간은 이미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생각되는 대상일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가 되었다.

 

침묵을 창조하라! 인간을 침묵에게로 데려가라(키에르케고르)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저자는 라디오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잡음어가 침묵을 점령한 현실에 우려를 나타내고, 말이 침묵과 연관되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최근 임재범 가수의 말(노래)가 대중들에게 크게 감동을 주고 있는데, 이는 임재범씨가 오래토록 침묵했기 때문 아닐까?

 

      2011. 6. 14.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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