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역사)

세계사편력1 중애서

자작나무의숲 2011. 6. 26. 11:24

2004. 7. 20. 읽은 네루 <세계사편력 1>을 다시 펼쳐 눈에 띄는 몇 구절을 옮겨 보았다. 장대비가 쏟아져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산 책은 이미 다 읽어버려 할 일이 없으니 이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아시다시피 네루가 독립운동 때문에 감옥에 갖혀 있는 동안 딸(그 뒤 인도 총리가 됨)에게 세계사에 관하여 쓴 편지를 모은 내용이다.

 

옛날 우리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가족을 위해서는 개인을, 공동체를 위해서는 가족을, 나라를 위해서는 공동체를, 영(soul)을 위해서는 전 세계를 희생하라"......이 산스크리트어 문장이 전하는 교훈은 더욱 큰 행복을 위한 협력과 희생이다. 우리 인도 사람들은 이 진정한 위대함으로 가는 가장 훌륭한 길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쇠퇴한 것이다.

 

먼젓번 편지에서 나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썼다. 역사란 변화를 기록한 것일 뿐이다.

 

상 왕조가 쫓겨날 때, 그 고관 가운데 한 사람인 기자라는 사람은 주나라를 섬기기보다는 차라리 망명을 택했다. 그는 부하 5000명을 거느리고 중국을 떠나 코리아로 갔다......기자와 함께 기원전 1100년에 조선의 역사는 시작되었다......일본의 역사는 중국이나 코리아 또는 조선의 역사처럼 오래지 않다.

 

민족의 역사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처음에 성공하고, 그러면 곧 거드름을 피우고 다른 민족을 압제하게 되며, 그리고는 마침내 몰락한다(헤로도투스)

 

"만일 진리탐구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나를 석방하겠다고 제의한다면 나는 말하겠소......나에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철학이라는 천직을 버리지 않을 것이오"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진리와 지식의 대의에 봉사했지만 죽음을 통해 가장 훌륭한 봉사를 했다.

 

서기 1000년의 아시아와 유럽을 비교하면 아시아 쪽이 훨씬 더 앞서 있었던 셈이다.

 

인간은 자신의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를 보아 왔다.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탐구란 원래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문명의 황혼을 알리는 조짐이다. 이런 상태가 시작되면 그 문명의 생명은 쇠멸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반복과 모방이 아닌 창조야말로 생명력을 나타내는 징후다.

 

이슬람교는 진보의 충동을 인도에 가져다 주었다.

 

고대 인도의 생활을 특징지어 온 종교적 관용과 양심의 자유가 어느 정도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훼손된 반면, 유럽은 많은 투쟁을 거친 뒤 이와 동일한 원칙을 확립해 이제 이 측면에서 우리를 앞서 버렸다.

 

이 종교와 문화의 종합 문제는 몇백 년 동안 인도 정신의 뛰어난 일면을 붙잡아 주고 있었다. 인도는 그것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정치 사회적 자유를 소홀히 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바야흐로 유럽이 여러 가지 면에서 한꺼번에 진보를 이룩한 그 때에 인도는 꼼짝달싹 못 한 채 진보와 발전을 중지당하고 말았다.

 

오늘날 세계사의 중심부로 나아가고 있는 인도는, 이와 같은 역사서를 쓸 수 있는 지도자 네루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인도 중심으로 세계사를 개관하였지만 그 점이 거슬리지는 않았다. 종전에 우리가 읽었던 세계사와 비교할 때 형식, 내용 면에서 색다르다. 여러 가지 사정상 자세한 내용을 옮기지는 못한다.

 

             2011. 6. 26. 진주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