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역사)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2. 2. 13. 08:30

1. 개괄

함석헌의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정의하고, 이 민족에게 고난을 지움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고 본다. 당초 책 제목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인 데서 드러나듯 성경과 연관지어서 우리 나라 역사를 해석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2. 발췌

석가요, 예수요 하는 위대한 종교의 스승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그때의 제도를 전적으로 깨뜨리고 나서는 혁명가들이었다. 그들이 고정된 율법서를 만들 리가 없다. 그것은 그들의 정신에는 정반대되는 것이다.......경전의 생명은 그 정신에 있으므로 늘 끊임없이 고쳐 해석하여야 한다. 새로운 생활체험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역사이해가 있어 그것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와 같이 역사에 적는 일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골라진 사실이요, 그 고르는 표준이 되는 것은 지금과의 산 관련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그 사실이 가지는 뜻이다.

 

역사를 메는 것은 개인도 계급도 아니요 민족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의 밑에 숨어 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이 땅도 사람도 큰일도 작은 일도 정치도 종교도 예술도 사상도 무엇도 무엇도 다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다......이 고난이야말로 한국이 쓰는 가시 면류관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이었다.....그리하여 세계역사 전체가, 인류의 가는 길 그 근본이 본래 고난이라 깨달았을 때 여태껏 학대받은 계집종으로만 알았던 그가 그야말로 가시 면류관의 여왕임을 알았다.

 

민족적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의 평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아는 것은 나지만, 또 나를 아는 것은 남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나 그것을 알아야 참으로 나를 안 것이다.

 

'인'을 우리말로는 '착하다', '어질다', '크다'로 말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착하다'로 대표하고 싶다. 우리 사람은 근본이 착하다. 착한 사람이다.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고난의 역사로 지는 것이 우리가 아니라, 지면서도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다. 죽음보다 더한 것이 우리다. 이것이 한이다. 민족이다.

 

위대하려면 민중 전체를 잡아야 한다. 민중을 잡는 것은 정신이요, 뜻이다. 민중은 뜻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뜻이 있는 것을 보면 몸도 마음도 다 바친다. 민중은 위대해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역사는 장차 올 것 때문에 있는 것이다. 始가 終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이야말로 처음부터 시를 결정하느니라. 그러므로 뜻이다.

 

최영은 마음은 곧으나 지혜가 적었고, 뜻은 굳으나 기다릴 줄을 몰랐다.

 

자유를 판 놈은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기는 법이다.

 

우리는 위에서 이성계가 이기고 최영이 패할 때, 이상주의가 죽고 현실주의가 이겼다고 하였지만, 이상주의의 귀함은 반드시 그 이상이 실현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현실의 낮고 가까운 것보다 이상의 높고 먼 것을 따르려는 그 정신, 그 기개가 민족을 살린다. 인생은 정신에 살고 기개에 산다.

 

(사)육신의 사명은 처음부터 성공에 있지 않고 역시 죽는 데 있다......이 민족을 위하여 제물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어야 했다. 죽어서 첫째는 한국을 위하여 불의의 빚을 물어야 했고, 둘째는 의인의 씨를 살리러야 했다.

 

사람은 오직 고난의 절정에서만 비로소 자기의 근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왔다.

 

나무가 흔들려야만 뿌리가 깊어지듯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만 깊어진다.....얻어서 자유가 아니라 얻으려는 데가 자유다.

 

언제나 사회가 발전하는 힘은 중산계급에 있다. 그들은 밑의 가난한 층같이 지나친 고역에 힘이 빠진 것도 아니요, 위의 특권층같이 썩은 것도 아니요, 생활의 여유를 가져 사상할 자유가 있고, 일을 할 경제적 실력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두 가지로 남는다. 하나는 뒤에 남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속에 남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역사라 할 때는 뒤에 남는 역사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역사는 기록으로 남거나 유물로 전하게 되는 그것만이 아니다. 그 밖에도 현재의 산 사실로 생명의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우리가 보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이 이 민족의 생명 안에, 우리 자신 속에 살아남은 역사다.

 

고난은 생명의 한 원리다(간디). 우리는 고난 없이는 생을 상상할 수 없다.

 

생은 명이다.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이 삶이다......사명의 자각이야말로 재생의 원동력이다.

 

이 민족은 채 죽지는 않았느냐? 그럴 만한 가능성이 있느냐? 있다. 무엇으로 있다느냐? 그 '착함'으로다.

 

반성은 모든 지식 행동의 총결산인 동시에 또 그 시작이다.

 

3. 소감

판사생활 20년을 마치고, 임기 10년의 판사로 재임용되었다. 1992년 처음 판사가 되었을 때 '단 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판결을 해보자는 것'이 나의 뜻이었다. 새로운 10년을 지배할 뜻을 무엇으로 세워야 할까?

 

  2012. 2. 13. 진주지원을 떠나며(당분간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블로그 활동이 뜸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