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역사)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8. 21. 13:19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쓴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읽었다. 저자는 1960년생으로 현재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21세기의 생각하는 대중을 위해 쓴 통사이자 부문사라고 한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고 파악한 다음 실제 역사를 뒤져가며 이를 확인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알코올을 금하는 것으로 욕망에 눈뜨지 못하도록 제어하려 했고, 커피를 마심으로써 의식을 각성상태로 만들어 이성적으로 생활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유럽의 기둥은 고대 그리이스 로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대 이집트를 포함한 그리스 로마, 즉 지중해문명이 유럽의 출발점이자 원천입니다.

 

르네상스 시기에 단번에 유럽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라는 근사한 원형 및 본보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위선적인 교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성서를 민중의 손에"라는 대담한 구호를 내걸고 교회지배의 근간이 되는 성서의 독점을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가 시작한 것이 바로 성서의 독일어 번역입니다.

 

언어의 독점이 권력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미셸 푸코)

 

진정한 권력은 그 시대의 지식을 독점하는 것입니다. 중세 유럽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에 대한 지식이었습니다.

 

근대적 자본주의는 루터 뒤에 등장하는 칼뱅신학을 받아들인 나라들에서 발전했다고 합니다(네덜란드, 영국, 미국) / 그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부단히 선행을 베푸는 것으로 자신은 구원받아야할 인간이라는 확신을 얻는 것입니다. 

 

정신과 신체를 나누어 신체에는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에는 기독교, 특히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적인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중세에 성서라는 지식을 지배하는 것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력으로 이어졌듯이 근대에서는 시선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으로 이어집니다.

 

근대는 신체 중에서 시각이 우위에 서는 시대입니다. 그것이 '보다 - 보여지다'라는 구조를 극대화시켜서 '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를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시 후보들간 대중연설 접전 상활을 보면 늘 '아, 이것이 서양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표현력과 연설력, 설득력으로 리더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 당시의 로마제국이나 전성기의 이슬람제국처럼 제국을 오래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피정복민에게도 다소의 이점이 느껴지도록 하면서 지배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본인 혼자서는 다 사용하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부와 권력을 의무도 다하지 않은 혈족에게 남기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자본주의는 수많은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데 반해 사회주의는 백 년도 버티질 못하고 붕괴해버리고 말았을까요?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시스템인 데 반해 사회주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차이를 만들어내어 차별화하는 것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데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는 물건을 소비하는 '욕망 긍정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자본주의의 진짜 적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대립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신의 뼛속까지 스며든 욕망'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부르디외는 돈으로서의 '자본'뿐 아니라 '사회관계자본'이라는 것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 사회관계자본은 돈으로서의 자본 이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관계자본이란 간단히 말해 '인맥'을 말합니다. / 그는 '문화자본'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것은 계층에 따라 좋아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칼 포퍼는 "마르크스주의는 반증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막스 베버는 1918년 관료제의 필연적인 결과로 사회주의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을 위대한 무언가에 바침으로써 안정을 얻는다'는 역설적인 회로가 바로 종교와 신앙의 근본입니다.

 

무슬림은 꾸란을 매일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어 어릴 때부터 그 가르침을 익힙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음독에 의해 배운 것은 평생 지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기쁨보다 고통을 나누는 것으로 그 유대가 더욱 견고해집니다.

 

왕조사나 연대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은 역사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종전의 역사책에서 볼 수 없었던 세상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맘껏 음미할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2010. 8. 22.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