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12. 7. 21:42

앨버트 허시먼이 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읽었다. 저자는 좌우 모두에서 인정하는 세계적 경제학자로서 프린스턴대학 고등연구소 석좌교수로 재직하던 중 이 책을 썼다. 미국에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까지 보수주의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저자가 주목했던 것이 바로 언어의 권력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즉, 지배하는 쪽이든 지배를 거스르는 쪽이든, 새로운 물결을 타고 있는 쪽이든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싶은 쪽이든, 그 관계에서 작동하는 언어의 권력은 물질의 권력보다 강하다.

 

이 책에서 변화의 흐름이 진행될 때 역사적으로 작동했던 세 종류의 수사적 무기는 역효과 명제, 무용명제, 위험명제라고 정리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문명의 중요한 진보란 거의 예외 없이 그 진보가 일어난 사회를 파괴하는 과정이다(앨프레드 화이트헤드)

 

역효과 명제에 따르면 정치, 사회, 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자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다.

 

무용 명제는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본다.

 

위험명제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정신이 앞을 향한 진전을 시작한 이후......어떤 이방인의 침입도, 어떤 압제자의 동맹도, 어떤 편견도 인간을 뒤로 돌아가게 만들 수는 없었다(콩스탕)

 

인간의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는 생각은 프랑스 혁명 때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인해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된다. 자유에 대한 추구가 테러와 전제정치로 끝나자, 혁명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개인의 동기와 사회적 결과가 명백히 일치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다수가 권력을 갖고 있지만......다수는 옳지 않다! 올바른 사람들은 나와 같이 고립된 몇몇 개인들로 존재할 뿐이다! 소수가 언제나 옳다!(헨리크 입센 <민중의 적> 중에서)

 

무용 명제 주장이, '더 많은 일이 바뀔수록 더 많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고전적 표현을 통해 프랑스 혁명 직후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1831년 당시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위치는, 비슷한 맥락에서 오늘날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슷하다......민주주의가 실현되면 왕과 귀족은 사라지고, 과거의 것임을 드러내는 모든 종류의 표지도 싹 쓸려 나간다는 것이다(제임스 버틀러).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가 저질러졌던가!

 

레슬리 스티븐은 투표가 대중의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무해한 통로를 유도하고, 파업이나 폭동 같은 더 위험한 형태의 대중 저항을 불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민주적 시스템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국가의 활동을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영역으로 제한하는 것이다(하이에크) / 다시 말해서 특정 국가에서 통치 영역이 계속 증가하기만 하는 것이 예속을 향한 경향이라는 것이다. 이 단순화된 주장은 복지국가에 적용되는 위험 명제의 가장 큰 버팀목으로 남아 있다.

 

위험론은 새로운 정책이 제안되거나 공식적으로 채택되자마자 나타날 수 있는 반면에, 역효과론은 보통 새로운 정책에 따른 좋지 않은 경험들이 축척된 이후라야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무용론의 경우는 더욱 늦게 나타나게 된다.

 

그들은 당면 과제에 대해 너무 많은 주장들을 동원하면 논지가 강화되기보다는 약화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용의자가 너무 많은 알리바이를 제시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과 똑같다.

 

진보주의자들은 '언제나 좋은 일들은 모두 공존한다'고 확신한다. 반동주의자들이 제로섬이나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어떤 정책의 옹호자들은 그것이 옳다는 관점에서 그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했다. 더 큰 수사 효과를 거두기 위해 그들은 그 정책이 어떤 임박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에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반동주의자들의 주장들 각각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진보주의 짝을 가지고 있다.

 

반동 :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 새로운 개혁은 옛 계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반동 :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언론기사를 읽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경제학자가 이러한 글을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2010. 12. 7.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정치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을 읽고  (0) 2011.01.12
창의성의 발견을 읽고  (0) 2011.01.09
신문화지리지를 읽고  (0) 2010.11.28
9시의 거짓말을 읽고  (0) 2010.10.17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읽고  (0) 2010.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