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9시의 거짓말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10. 17. 20:52

최경영 KBS 기자(휴직중)가 쓴 <9시의 거짓말>을 읽었다. 지은이는 2006년 제헌절 기념 KBS 스페셜 <법은 평등한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 때 필자는 최경영 기자를 직접 또는 전화로 몇 차례 접촉한 인연이 있다. 이 책은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한다'는 부제가 말해주듯 워렌 버핏이 말하는 기업의 본질 가치와 한국 언론의 진실을 등가로 보고 한국 언론이 워렌 버핏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국익을 믿지 않습니다. 뭉뚱그려진 국가 이익은 기득권을 위한 변명이자 위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 책은 개인의 이익을 존중합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에는 아픔이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인간적 고통이 없습니다.

 

우리 생활의 80퍼센트가 감성이고 20퍼센트가 이성(룬츠)

 

기자가 쓰는 글은 함축적이면서도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기사와 다른 글을 구분하는 핵심적 요소는 사실의 구체성입니다.

 

언론은 전문가를 필진이나 토론 패널로 쓰기 전에, 이력을 철저히 검증해서 꼭 '제2의 명함'을 독자와 시청자에게 공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절감하는 것이다(워렌 버핏)

 

동기가 좋지 않다면 뛰어난 두뇌, 재치, 판단력 등 인간의 모든 재능이 극단적인 해악이 될 수 있습니다(칸트)

 

20세기 초반, 미국의 AP통신은 인터뷰 기사를 금기시했습니다.....인터뷰기사는 보도된 뉴스가 아니라 만들어진 뉴스라고 당시 미국 언론인들은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명백히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그 부당함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결과적으로 그 부당함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춥니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진보는 이런 고집불통들이 이루어냅니다(조지 버나드 쇼)

 

신문과 TV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신뢰의 위기입니다.

 

한국의 언론은 주로 팔리는 헤드라인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신문에는 진실, 있음직한 이야기, 그럴듯한 이야기, 그리고 거짓말이 있다....착오와 거짓으로 점철된 신문을 매일 읽는 사람보다 신문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 좀 더 진실에 접근한다(토머스 제퍼슨)

 

사실 앞에서 이론은 그저 공허할 뿐입니다(마크 트웨인)

 

빌 코박은 대중의 삶에 적절히 연관되는 사안 즉 필수적 사회 현안을 대중이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인의 사명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한국의 대중은 비교적 단일하고, 균일한, 게다가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한 집단입니다.

 

미국 언론인들은 스스로를 회의적인 인간, 또 회의적이어야 하는 인간으로 규정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정말 인식하기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지적능력이 평균보다 떨어진다는 사실(대니얼 카네만)

 

언론인이 똑똑할수록 사회가 더 윤택해진다(워렌 버핏)

 

대중이 미디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인데 말 많다고 나무라면 민주주의는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사람이 뉴스를 찾기 위해서는 첫째 그 사람의 상황이 불확실해야 하고, 둘째, 뉴스가 그 사람과 연관돼 있어야 한다.

 

언론철학의 대가 존 머릴이 통찰한 것처럼 우리의 진정한 직업정신은 단 하나, '자유 언론 실천'입니다.

 

저자의 신분이 기자다보니 분노와 답답함, 부끄러움 때문에 한국 언론의 상황을 과장한 면도 있는 것 같지만, 현직 기자의 언론 현실 고발을 가볍게 들을 수는 없었다.

 

       2010. 10. 17.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