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감정노동>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6. 22. 22:14

앨리 러셀 혹실드가 쓴 <감정노동>을 읽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다. 그녀는 1983년부터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보편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감정노동이란 사람들이 개인의 기분을 다스려 얼굴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통해 외부에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노동은 임금을 받고 판매되기 때문에 교환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것과 비슷하지만 개별적인 맥락에서 사용가치를 갖는 경우를 지칭할 때는 감정관리라는 용어를 쓴다. 감정노동은 항공사 승무원에게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부제가 말해주듯 '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승무원의 경우에는 서비스를 제공할 때의 감정 상태도 서비스의 한 부분이다.

 

승무원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노동을 수행한다. 저자는 이것을 감정노동이라 부른다.

 

노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일자리들이 대개 사물보다는 사람을 다루는 능력을 요구하고, 대인관계의 기술을 더 요구하는 한편 기계를 다루는 기술의 필요성은 줄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감정은 합리적 사고를 위한 잠재적 통로다. 게다가 감정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려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연기를 하면서 산다. 첫 번째 방식의 행위에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바꾸려고 한다. 이것이 표면 행위다. / 또 다른 방식은 내면 행위다. 여기서 감정표현은 감정 자체를 조작한 데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감정이 행위에 선행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감정에 관한 규약이나 도덕적인 거리를 설정하는 것은 문화가 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감정 법칙이라고 부르는 이 규약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부적합한 정서란 남들이 기대하는 정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것을 통해 학자들은 환자가 어떤 사건에 관해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유추해낸다.

 

감정부조화의 원리는 인지 부조화의 원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감정과 겉치레의 구분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다 보면 긴장이 발생한다. 우리는 느껴지는 감정을 바꾸거나 감정에 관해 가장하는 내용을 바꾸는 방식을 통해 이 두가지 사이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이 긴장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직업에서 표현을 요구하면 보통 변화해야 하는 쪽은 감정이다.

 

돈을 주고 받는 것을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는 마치 그것이 돈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여야만 한다.

 

감정노동은 사람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만들어내야 하고 감독자를 통해 감정노동을 감시당해야 하는 직업에서만 발생한다.

 

감정노동자의 대다수는 중간 계급에 속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1983년에 이 책이 처음 나온 뒤로, 직장 풍경은 점점 둘로 나뉘고 있다. / 감정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가 자동화 때문에 퇴출된 것이다. / 비슷하거나 좀더 높은 직업 수준에서는 새로운 서비스 업무가 갑자기 발생하고 있다. 낸시 폴브르가 '복지 분야'라고 명명한 이 직업은 오늘날 미국 노동력의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 20년 사이 사회생활의 세 번째 분야가 천천히 등장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사적 생활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다윈은 감정을 행위의 원형으로, 행위 대신 또는 행위 이전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 하려다 만 행위로 정의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불안은 개인의 내부나 외부에서 위험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준다.

 

갈수록 제조업의 비중이 낮아지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우리나라에서, 사회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하나 생겼다.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직장생활을 둘러보면 문제점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가 있고, 문제점을 파악하면 대책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표면 행위나 내면 행위를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진심을 다하여 근로자를 행복하게 하고 근로자가 행복감에 고객을 대하게 되면, 노동의 소외는 줄고 기업의 이익은 늘고 고객의 만족은 높아지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2010. 6. 22.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