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미래의 법률가에게> 저자 앨런 더쇼비츠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5. 12. 22:44

앨런 더쇼비츠가 쓴 <미래의 법률가에게>를 읽었다. 부산지방법원에 근무하는 홍광식 부장판사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다. 저자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서 28세에 하버드대학 역사상 최연소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승률이 높은 항소 피고인 변호사로 불린다. 이 책은 현재의 법률가가 미래의 법률가에게

조언하는 내용이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수업시간에도 간명하게 쓴 글이야말로 훌륭한 글이라고 가르쳤다.

 

변호사가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명목으로 부패의 한 부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균형만 잡는다면 열정과 전문성은 서로 모순되는 가치가 아니다.

 

사람의 평판은 어느 정도 자신의 적에게서도 나온다.

 

가지 않은 길에 놓여 있을 장애물은 이미 택한 길의 장애물만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 않은 길은 더 매혹적으로 보인다.

 

자유에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판사 러니드 핸드)

 

진실을 밝힐 수만 있다면 진실에 이르는 절차는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만큼 위험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피터 가벨 교수가 제시한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길의 끝에는 틀림없이 지옥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법률을 논하고 있는 것이지 정의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네(홈즈 대법관)

 

정의를 정의롭게 추구할지어다(성경의 모세 율법). 이 율법에 왜 '정의'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반복되는지에

대해 고대 주석학자는 정의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악인을 벌하는 목적으로서의

정의와 무고한 자를 벌하지 않는 절차로서의 정의말이다.

 

나는 젊은 판사보다 80세 가량의 보수적인 판사 앞에서 변론하는 게 더 좋다. 야망이 더 적은 노판사는 내

법적 주장을 공정한 관점에서 판단해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검사란 윤리적 문제를 정의실현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공직이지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리가 아니다.

 

열정적인 변호사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은 물러서는 것이다.

 

직업에 으레 따라오는 대중의 비판에 대처하는 첫 번째 요령은 아는 사람의 비판과 모르는 사람의 비판을

구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요령은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미디어의 칭찬은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정의를 정의롭게 행할지어다. 주석학자들은 '정의'라는 단어가 왜 반복되는지를 묻는다. 나는 타인에 대한

정의와 나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상의 자유시장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 우리는 자유에 관한 한 우익과 좌익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진정 도덕적인 인간은 비용-수익 이론이나 상벌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해 주겠는가? 하지만 내가 나만 위한다면,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랍비 힐렐)

 

훌륭한 인격은 우리 내면에 도사린 이기심을 인식하고, 그것과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타심과 균형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중용의 길은 어렵지만, 중용 없이는 선을 논할 수 없다.

 

미래의 법률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현재의 법률가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같은 사법시험을 치르고 같은

다루는데, 법률가들끼리 갈수록 주장이 대립되는 현실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만일 잘못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막이 내려지기 전인 지금 고쳐야 한다.

 

                  2010. 5. 12.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