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소설)

조재철 <다리>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2. 20. 22:07

조재철 장편소설 <다리>를 읽었다. 작가는 대아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였으며,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외교관 생활을 하고 있다. 사적으로는 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다. 이 책은 자전적 소설인데, 내가 아는 한에서는, 어떤 부분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픽션이다. 그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닐 때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고, 뭔가를 꿈꾸는 듯한 인상이었으며 좀 엉뚱한 구석도 있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 남해에서 출생하여 진주,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신문사에 취직했다가 실연을 겪은 뒤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미국의 로스쿨에 진학하여 미국 변호사로 활동하였는데 직업에 회의를 느껴 헝가리에서 여행사를 경영하다가 결국 고향에 돌아오는 인생 여정을 펼치고 그 위에서 친구 의석, 희민을 만나고, 사랑하는 여인 성희를 만나 헤어지고, 끝내는 자신을 기다려온 혜진과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한국과 다른 나라에 있는 무수한 다리가 소개되고, 대금을 비롯한 국악 연주 이야기가 재미 있게 이어진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대금을 잘하기 위해서는 한을 가져야 돼. 극도의 슬픔과 간절한 그리움이 복합된 절실한 경험이 필요해.

 

결핍이 있어야 깊이 있는 한이 길러져.

 

비판도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비판되었고 이제는 세상의 따뜻한 구석을 세상에 드러내어 어둠을 비추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길을 보고서 희망을 찾지 말고 일단 희망을 가지고 길을 찾는 것.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루카치)

 

예술이 절실한 것에서 온다면 가난도 좋은 조건 중에 하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요. 가난 외에도 절실함을 느낄 수 있는 조건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으니까요.

 

영원의 미소는 사람 간의 진실한 사랑과 우정에 있음을, 다리와 사랑과 우정, 영원의 미소는 하나임을.

 

친구의 감춰진 면을 바라 보는 것은 재미 있는 일이다. 또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어 보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다. 아마도 다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해주는 다리의 이미지를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작가의 열망이 반영된 것 같고, 국악 이야기는 저 평가되고 있는 국악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반영된 것 같다.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2010. 2. 20. 부산에서 자작나무

(조금 전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아줘서 고맙다고. 그렇다. 소통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가 말하는 <다리>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다.

2010. 3. 18.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