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영화 하모니를 보고

자작나무의숲 2010. 2. 7. 20:19

영화 하모니를 봤습니다. 엄청 울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관계를 회복한다는 내용입니다.

쉬리의 김윤진이 여주인공인데, 그녀는 가정폭력에 맞서 남편을 살해한 죄로 10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아들을 키웁니다.

그녀의 제안으로 합창단이 만들어지는데, 지휘자는 사형을 선고받은, '커침 없이 하이킥'의 나문희님이 맡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제자와 바람을 핀 남편과 그 제자를 무참히 죽여 사형을 선고받죠.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복역하는 예쁜 여자(배우 강예원)가 합창단에 합류하고,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안미녀로 나온 여배우(배우 박준면), 한예슬이 출연한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실성한 여자 '강자'로 나온 여배우(배우 정수영) 등이 합창단에 합류하고, 착한 여교도관(배우 이다희)이 피아노 연주를 맡습니다.

 

특히 저는 여교도관이 규정을 어기고, 외부 병원에서 아들을 간호하려는 김윤진의 수갑을 풀어줄 때 엄청 울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마도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재소자를 배려하는 공무원에 대한 존경심일 수도 있고, 피고인들에게 저 정도의 배려도 못했던 자책감도 있겠지요.

죄수에게서 뉘우침을 빼앗지 말라던 어느 시인의 시구도 생각났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형을 선고하는 것은 판사의 몫이겠지만, 결국 뉘우치는 것은 피고인의 몫이겠죠. 피고인이 뉘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그것 역시 판사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뉘우침이 교화에 앞서는 것이고, 뉘우침은 사랑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으며, 사랑은 스스로를 솔직히 드러내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모니는 합창단 속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도, 교도관과 재소자 사이에서도, 교도소와 이 사회 사이에서도, 어쩌면 존재하는 모든 것 사이에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여기에 재소자들은 겉으로는 가해자로 등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가정폭력의 피해자, 성폭력의 피해자, 불륜의 피해자들이죠. 그러니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할 수 없는 만큼 그들 사이에도 하모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모니는 최소한 상대방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고양되겠지요.

영화를 보면, 재소자들이 전국합창대화에 특별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오해를 받아 경찰관으로부터 알몸으로 수색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 때 재소자들에게 이제껏 냉정했던 방과장(배우 장영남)이 매우 흥분하며 경찰관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교도관이 재소자라는 인간의 존엄함을 인정하는 순간이죠.

우여곡절 끝에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의 합창이 큰 호응 속에 끝나고, 그 과정을 통하여 사형수는 자녀를 만나고, 김윤진은 교도소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입양보냈던 아들을 만나고,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 재소자는 의붓아버지의 아내 즉 자신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사형수 나문희님이 사형집행을 받으러 가다가 뒤돌아보는 것으로 이 영화는 끝나죠. 아마도 사형제도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그녀를 죽이지 않고서 그녀의 잘못과 이 사회의 방위 사이에 하모니를 이룰 수는 없을까? 하고 말입니다.

 

감옥에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서 피고인들에게 합계 1000년 이상의 형을 선고한 저를 비롯한 많은 법조인들이 한번 꼭 봤으면 하는 영화라서 어줍잖은 실력으로 영화 본 소감을 올립니다. 다만, 사형수는 교도소가 아니라 구치소에 수용한다는 점, 사형수는 구치소 내에서도 수갑를 채운다는 점이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고, 이 영화에서는 이와 어긋나는 설정이 있지만, 그 점이 이 영화의 흠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영화를 보시면 알 것입니다.

                     

                       2010. 2. 7.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