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이삭의 집에서 그 소년을 만나다

자작나무의숲 2009. 5. 30. 19:41

오늘 부산법원 직원들이 만든 봉사단체인 '정겨운 세상 만들기' 회원과 함께 이삭의 집을 방문하였다. 윤인태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민중기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비롯하여 부산고등법원, 부산지방법원 직원 10여 명(3팀 소속)이 참여하였다. 12시에 이삭의 집에 도착하였다.  이삭의 집에서 만든 수제비를 먹었다. 맛있어서 두 그릇을 먹었다.

 

이어서 이삭의 집 원장 주영숙님으로부터 이삭의 집 소개가 있었다. 이삭의 집은 부산 수영구 광안4동 주택가에 3층 짜리 주택을 지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 19명을 키우고 있다. 주영숙 원장님은 수녀가 되려다가 실패하고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지 않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키우키로 마음 먹고 이삭의 집을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운영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집 지을 때 국가로부터 1억 8천만 원 정도 빌린 이외에는 국가 보조금을 받지 아니하고 후원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한다. 원장과 직원 1명이 아이들과 생활이 같이 하면서 이삭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삭의 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cafe.daum.net/esag 참조

 

최근에는 구청으로부터 아이들이 많다는 이유로 일부 아동을 다른 시설로 보내라는 권유를 받고 있으나 다른 시설에 보내지면 새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아이들을 생각하여 거절하고, 어렵지만 아이들을 그대로 돌보고 있다. 국가에서는 대학교 들어간 아이들에게는 자립심을 길러 주어야 한다며 시설에서 내보낼 것을 권유한다고 하나, 자신은 대학교 들어가도 스스로 살 수 없으므로 아이들을 내보지 아니 하고 아이들이 취직을 하여도 살 집이 없으면 같이 산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명단 중에 대학교에 재학 중에 있는 사람, 군대에 간 사람도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에게는 원장을 어머니라고 부르게 한다. 어머니라는 호칭을 통하여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 학적부에는 시설에 사는 것이 아니라 보통 가정에 사는 것처럼 기재하고, 건물에도 이삭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지 아니 한다. 여느 가정과 똑같이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아이 중에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있으면 학교에 가서 한 턱 내고 온다.

 

19명의 아이를 국가의 보조를 받지 아니 하고 키운다고 하니 믿기지가 아니 하였다. 원장님도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말하였다. 천주교 신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나도 매월 조금씩 보태기로 마음 먹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은 아이들에게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는 방법이 공부이니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면서 법원에서 온 분들이 본보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회원들이 모은 약간의 돈을 전달하였고, 여름방학 때 아이들을 법원에 초청할 것을 약속하였다.

 

1시 반쯤  아이들 15명 정도와 함께 황령산 청소년 수련원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30분쯤 걸어 청소년수련원에 도착하여  돗자리를 깔고 빙둘러 앉았다. 광안대교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박운삼 판사가 사온 통닭과 콜라를 먹으면서 사전에 편지를 통하여 맺은 짝이 같이 일어나 자기 소개 및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고등학교 태권도 특기생과 짝이었는데, 소개를 한 뒤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하였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로 마음 먹은 이상 어느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하여 상처받지 않기로 마음 먹어야 하고 그럴러면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였다. 고등학교 때 반장할 기회가 있었으나 사촌으로부터 물려받은 옷이 남루하여 반장을 못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짝을 이룬 고등학생은 즉석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였고, 좋은 분들이 와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였다.

 

중간 중간에 옥동건 사무관의 우스개 소리가 이어졌다.

직업별로 아이들 성적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다르다.

야채장수 : 쑥쑥 올린다.

성형외과의사 : 몰라보게 올린다.

한의사 : 한방에 올린다.

목욕탕집 : 때를 기다린다.

 

이삭의 집에 가기 전에는 애들이 서먹해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다들 표정이 밝고 우리와 노는 것이 즐거운 눈치였다. 마치 소풍가는 기분인 모양이다.

당초 계획에는 청소년수련원에서 헤어지고 법원직원들만 황령산 정상까지 등산하는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애들의 반응이 좋아 정상까지 같이 등산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애들은 다람쥐처럼 산을 탔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남녀 아이들이 종달새처럼 지저귀며 짝을 이루는 법원직원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였다.

 

나는 편지를 보낸 고등학교 1학년 남자와 함께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형은 이삭의 집에 살다가 얼마 전 군대를 갔다고 한다.  예의가 바르고 밝아서 참으로 흐뭇했다. 오전엔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10시까지 태권도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 나의 취미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수련회 갔다가 노느라고 잠을 못잤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이 간 아동중에는 어릴 적 청력을 잃었다가 원장님의 노력으로 3년 전에 인공와우 수술 2회를 받아 언어치료를 하는 애가 있었다. 근데 아직까지 말이 아주 서툴렀다. 어릴 때 말을 듣지 못했으니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아. 대화란 듣는게 먼저고 말하는게 뒤구나....... 나는 말을 먼저하고 남의 말은 나중에 듣는데......

 

봉수대에서 사진을 찍고 아스팔트 길을 타고 이삭의 집까지 내려왔다. 5시 40분 정도 되었다. 이삭의 집 원장님은 토마토 쥬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당에서 먹고 이삭의 집을 나왔다. 마침 오늘이 여자 아이의 생일이라는 말을 듣고 윤인태 수석부장판사가 빵집에 들러 케잌 2개와 방 20개를 주문해 이삭의 집으로 보냈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절망하기엔 이르다. 즐거운 하루였다.

 

          2009. 5. 30.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