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나이 먹는 일의 기쁨과 슬픔

자작나무의숲 2010. 2. 12. 12:30

모레가 설날이다. 설을 쇠면 46살이 된다.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에 다가서는 나이다. 스스로를 돌아 보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 아니라 남을 유혹하지 못하는 불혹이 되었을 뿐, 40살을 넘긴 점만으로 깊어지거나 넓어진 것은 없다.

 

3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27살에 판사가 되었다. 29살에 소액사건 단독 판사가 되었다. 그 때는 모든 게 모자랐다. 우선 법을 잘 몰랐고, 남의 말도 잘 알아 듣지 못했으며, 세상물정도 어두웠다. 그러나 열정만은 뜨거웠다. 그래서 판례를 찾고, 교과서를 읽고, 남에게 물었다. 야근도 밥 먹듯이 했다. 우여곡절은 거쳤지만 판사직을 그럭저럭 수행할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이제 46살이 되고, 법관경력도 20년이 넘었다. 법도 조금 알게 되었고, 남의 말도 조금 알아 듣게 되었으며, 세상물정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었다. 대가를 치렀다. 열정이 예전 같지가 않고, 도덕수준도 낮아졌다. 야근도 별로 하지 않는다. 사건을 물고 늘어지지도 않고, 모르는 사건이 있어도 남에게 잘 묻지도 아니 한다. 

 

30대에 형사단독 판사를 할 때 어느 지원장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30대가 되면 단독판사로 판결할 수 있다', '부처님도 득도한 때가 30대였고, 예수님도 돌아가실 때가 33살이었다'며

 

그분의 말씀을 지금에 와서 풀어 보자면, 아마도 '세월의 부피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중요하다. 그러니 나이가 적다 많다에 얽매이지 말고 세월의 무게를 체화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경험하여라'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상물정에 밝으면서도 열정과 도덕성을 그대로 간직하며 나이를 먹을 수는 없을까? 설날을 앞두고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몇 자 적는다. 그러고 보니 생일이 이틀 남았다. 어릴 때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생일밥을 차려 주시던 그 분은 떠나고, 아! 나도 어른이 되었나 보다.

 

        2010. 2. 12.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