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책을 읽는 이유 3가지

자작나무의숲 2010. 2. 16. 19:00

블로그가 입소문이 나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1. 무지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그 때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 

 

2.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하여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 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되신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 저것 읽어보자고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3.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의 중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 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더욱 그런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소신을 갖추려면 앞서 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 보는 과정을 거치면 생각이 단단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4.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그런 구절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께 책을 한번 읽어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2010. 2. 16.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