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백낙청의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8. 26. 21:58

백낙청의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를 읽었다. 저자는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6 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역임하였다. 저자는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화두로 삼아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이 책은 2006 - 2009년 남북관계나 국내 정치상황에 관하여 쓴 글을 추려 정리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분단체제의 극복이 민주주의의 완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무력통일도 아닌 흡수통일도 아닌 시민참여형 통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변혁적 중도주의 이념이 필요하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기간과 대체로 겹치는 분단체제의 고착기는 남북 모두가 그 나름의 안팎 조건을 갖춤으로써 유지되었다. 그런 조건 중 하나는 적대적이면서도 기묘하게 상호의존적인 양쪽의 독재권력이었는데, 남녘 국민이 6월 항쟁을 통해 그 한축을 무너뜨리면서 분단체제는 동요기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최종목표는 한반도 주민들의 평화롭고 인간다운 삶인데 한반도와 한민족의 경우 그 목표를 위해 통일이라는 수단이 필수적이라는 이곳 고유의 실정을 인식하고 이를 밑받침할 과학적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

 

베트남, 독일, 예멘 같은 통일방식마저 배제된 상태라면 교류협력의 증대와 이에 따른 남북의 점진적 재통합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어떤 느슨한 - 단일 중앙정부를 갖는 연방제에 멀리 못 미치는 - 정치적 연합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해지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6개국 외 '제7당사자'이자 남북관계의 '제3당사자'로서 남한 민간사회, 특히 시민운동의 역할이 빛을 발할 기회다.

 

한반도식 통일은 다수 시민들의 각성과 능동적 참여에 의존하리라는 뜻에서 나는 이를 '도덕통일'로 지칭하기도 했다.

 

분단체제가 조장하는 도덕적 타락의 대표적 사례로 '남의 탓' 습관을 들 수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민중을 폭넓게 규합할 수 있는 노선으로 나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창해왔다. 중도가 아니고서는 광범위한 연대가 불가능한데다, 무원칙한 중도마케팅이 아닌 줏대 있는 중도세력이 되려면 한반도 차원의 변혁과 국내의 개혁작업을 결합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나는 2008년의 촛불군중과 2009년에 노무현을 애도한 대중이야말로 지식인들보다 변혁적 중도주의에 오히려 가까이 다가섰다고 믿는다.

 

어차피 베트남식, 독일식, 예멘식이 모두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런 문제로 다투어서 분단 기득권세력을 거들어주는 대신, 하루빨리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협력을 증대하며 사회문화교류를 확대하고 상호 신뢰구축을 진전시키면서 남북간에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그런 대체적인 방향으로 진행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어물어물 진행되다가 문득 통일의 단계로 들어서는 과정이야말로 한반도식 통일의 특성이며 그 적극적 내용인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바꾸면 한반도식 통일은 곧 시민참여형 통일입니다. 점진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일반시민의 참여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뿐 아니라, 과정과 종결점의 구분 자체가 모호한 상태에서 그 과정의 실상에 따라, 즉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해서 어떻게 해가는가가에 따라, 통일이라는 목표의 구체적 내용마저 바뀔 수 있는 개방적 통일과정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다시 말해 원래의 자유주의 나름의 역사적 진보성마저 결여한 반민주적, 반공동체적 이념인 것이며, 자유주의가 강조해온 개인의 권리를 웬만한 국가보다 거대한 실체인 다국적기업 법인들에게 보장해주는 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건강한 개인주의와도 거리가 멀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활로요 진정한 중도인 '선진화와 통일의 병행'이다. 

 

공인으로 공개석상에서 발언할 때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걸맞은 만큼 자기 소신을 밝히고 말을 아낄 만큼 아끼는 것이 곧 인문적 교양이라고 생각하는바, 내가 그러한 교양을 얼마나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적절하게 발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해명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느슨한 연합이야말로 평화공존을 최우선시하는 쌍방 당국 및 대다수 주민들의 입장과도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유럽 통합과 전혀 다른 한반도 재통합의 과정에서는 그 정도의 국가연합만 달성해도 더 높은 수준의 통일을 향한 움직임이 불퇴전의 단계에 안착하며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위험을 관리할 요긴한 장치가 마련된다는 점이 바로 한반도식 통일의 특징인 것이다. 

 

핵무장 상태가 성립해서 관리되는 분단상황은 극소수의 정책결정자와 전문가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시민참여의 폭이 크게 제약되는 상황이 되게 마련입니다.

 

유일한 해답은 남은 4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대통령에게 남겨주면서 나머지는 내각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시민사회 등의 몫으로 배분하는 정교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변혁의 대상은 한반도의 분단체제입니다.

 

무엇보다도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존의 잣대에 얽매임이 없이 성찰하는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만남으로써 폭넓고도 줏대있는 중도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교양은 세상에서 생각되고 말해진 최상의 것을 아는 일(아놀드) 

 

핵실험, 6자 회담, 비핵화가 얽힌 한반도에서 통일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한가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일독을 권한다.

 

             2009. 8. 26.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