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에마뉘엘 피라의 '법은 사회의 브레이크인가 엔진인가'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5. 17. 11:43

에마뉘엘 피라의 '법은 사회의 브레이크인가 엔진인가'를 읽었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파리 변호사협회 회원으로 지적 재산권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중이기도 하다. 베글 동성 결혼 사건의 변호를 맡은 바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법률가로서 프랑스 법과 법률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와 비슷하다는 점, 많은 자료가 인용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두 힘은 권리와 법이다. 이들이 일치하면 질서가 태어나고 이들이 대립하면 파국이 생긴다(빅토르 위고)

 

소크라테스 재판은 내용이 온전히 전해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대화 거부 재판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행동을 변명하려 하지 않고 그것이 일부러 한 것임을 주장한다. "아테나이 사람들이여, 제가 여기서 변호를 하는 것은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1905년에 도입된 정교분리 법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국가가 어떠한 종교도 금지하지 못하고 어떠한 종교도 장려하지 못한다. 하지만 프랑스 법은 교회에 '문화단체'라는 지위를 인정해주고 있으며 그 덕에 교회들은 수많은 이득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의 포스터는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민주 사회의 주요 덕목인 관용 정신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불필요한 모욕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문학작품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작품에 포함된 사상적 논쟁뿐이다.

 

법이 정당하려면 첫째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그 법은 공공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제정한 자도 정당해야 하며(제정된 법은 제정한 자의 권력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 내용도 정당해야 한다. 내용면에서 정당해야 한다는 말은 공공선의 요구에 따라 신민들에게 부과된 책무가 균등하게 부과되어야 한다는 뜻이다(토마스 아퀴나스) 

 

사실 변호사들의 성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판사는 마음대로 고를 수가 없다.

 

문학사에는 "가장 엄정한 법은 가장 不正한 법이다."라는 라틴 속담의 역설을 구현하는

'법에 미친' 인물들이 얼마든지 있다.

 

애석하게도 입법부에서는 항상 새로운 법을 만들기만 할뿐 법을 폐지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자유에 대한 법률들을 통제하고 행정부를 효율적으로 제한하며 사회의 사법적 규제를 보장하는 강력한 사법부야말로 국가의 힘이다. 위정자들은 이 불변의 진리를 너무나 오랫동안 잊어왔다(장-마르크 바로, 변호사, 드골의 심복이었던 모리스 파퐁의 참모)

 

이제 프랑스에서도 정치인들이 거부한 권리나 규칙을 판사를 통해 인정받는 '소송을 통한 정치 활동'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래서 판사는 민간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아래쪽'에서 법률을 만들어 '위쪽에서의' 입법과 경쟁하게 된 것이다.

 

사법부는 한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법관들은 무오류의 존재이다. 따라서 그들은 절대 처벌을 받지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언제나 무조건 무죄로 추정되는 시민은 법관밖에 없다.

 

몽테스키외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만 염두에 두었지 또 다른 권력의 출현은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제4의 권력이라는 '언론'이 법률에 관련된 분야에서도 전면에 등장했다.

 

대화거부 재판은 재판이 코메디가 되어갈 때 거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현재의 법을 부인하는 행위를 상징한다......소송을 음모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러한 투쟁방식은 '시민불복종'이라 불린다. 현대 시민의 주된 투쟁방식은 시민불복종을 통한 법의 변경이다.

 

"성전환은 설사 의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해도 진정한 성전환으로 볼 수 없다. 태어난 성의 특징 몇 가지를 없앴다 하더라도 반대 성의 특징을 그만큼 얻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프랑스 파기원 판결)

 

피에르 비달-나케의 지적처럼 공식 역사를 강요하려는 입법자의 시도에는 근본적인 위험이 뒤따른다.

 

결국 이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한 사람들이 있다"는 식의 말장난이 되고 만다.

 

과거 국가가 주체가 되어 검열을 행했다면 이제는 민간 소송으로 인한 검열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새로운 처벌 형식이 도입되었다. 이제 판사들은 재판이 시작하자마자 고발당한 출판물의 유통을 잠정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프랑스 법에는 존엄성 개념이 들어와 명예 개념과 공존하고, 심지어 법정에서 그보다 윗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사법적 논리가 불분명하고 복잡할 수밖에 없어 무기로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이데올로기를 조작하는 방법을 택했다(질 망스롱, 역사학자).

 

사형당하고 싶지 않으면 살인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려 하는가? 사람을 죽이면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가르치겠다는 말인가?......사형으로 인한 계도 효과는 도덕적이든지 비도덕적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도덕적이라면 감출 이유가 무엇인가? 부도덕한 것이라면 왜 그런 짓을 하는가?......19세기의 위대한 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뒷걸음질이 아니니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빅토르 위고)

 

법률가에게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나름대로 해결방향을 제시한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건 아니건 간에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없다. 법률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2009. 5. 16.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