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7. 4. 14:28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었다.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한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들어서 국민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헌법의 당위를 2부는 권력의 실재를 배치함으로써 대조효과를 살렸다. 즉, 대한민국 헌법은 그대로만 실현되면 누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권력의 실재는 그 헌법에 한참 뒤쳐진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서울대학교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었던 일, 국회의원, 장관을 거치고 정계를 은퇴했던 일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저자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유시민의 성과, 한계, 오류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하여 문명의 역주행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하고 있다. 끝으로 조심스레 자신이 이루고 싶어하는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을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 시련을 통해 한국 사회는 권력자의 선의에 의지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세우게 될 것이다.

 

보수 지식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 자체보다 자기의 견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진보의 사고방식은 연역적 구조를 가진다. '인간은 평등하다'와 같은 추상적 공리에서 시작해 구체적 실천 전략과 전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이어지는 일관성 있고 복잡한 논리체계를 만든다......진보의 경쟁력은 이상을 향한 열정과 논리의 힘이며, 망할 때는 거의 언제나 연합하는 능력의 부족 때문에 망한다.

 

보수는 경험주의적,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이익이 일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단결한다......그래서 보수가 망할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부패로 망한다......보수의 무능과 부패와 나태함이 민중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때에만 진보가 승리를 거두며, 그 진보의 승리는 보통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에서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불관용 그 자체뿐이라는 뜻이다.

 

민주공화국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서 국민들 개개인이 벌이는 경쟁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그 수단과 방법을 적절하게 제약하는 규칙을 도입했다. 이것이 법률 시스템이다......민주공화국은 또한 경쟁이 만들어내는 승자와 패자의 명함 차이를 완화하고 경쟁 기회의 불평등을 억제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것이 복지 시스템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다원주의적 경쟁력을 최대화하는 민주공화국의 질서와 규칙을 담고 있다. 따라서 헌법의 규정과 정신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데 기여하면 애국이 되고 그 반대면 해국이 된다. 이런 기준에 따른 애국행동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려고 하는 생각과 태도를 나는 '헌법애국주의'라고 부른다. 이 말은 내가 발명한 게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오류를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어짊의 시작이다. 왕이 소를 살려주고 양을 잡으라고 한 것은 소를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맹자 중에서).

 

어리석은 자를 견딜 줄 알라. 똑똑한 자들은 언제나 참을성이 없다. 지식이 많을수록 참을성은 줄기 때문이다. 통찰력이 큰 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제일 우선해야 할 삶의 원칙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며 지혜의 절반은 거기에 달려 있다(벨타사르 그라시안 신부)

 

위계질서를 가진 모든 조직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무능력이 입증되는 지위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피터의 원리)

 

비판하는 쪽의 오류가 비판받는 쪽의 오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노선만 보면 참여정부를 사회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하는 게 합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악한시스템이 만들어 낸 악한 상황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식소매상으로 자처하는 저자가 언젠가 정치인으로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는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다시 돌아온다면 그는 어떤 성과를 거두고 어떤 한계를 지니며 어떤 오류를 범할까?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2009. 7. 4.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