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6. 14. 19:48

장영희 교수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다. 작가는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8년의 암 투병 끝에 올해 5월 9일 돌아가셨고, 이 책은 결국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녀가 쓴 '내 생애 단 한번', '축복'을 읽었을 때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책이 잘 읽히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우선 그녀의 솔직함이다. 그녀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았고, 그것 때문에 연세대학원 진학이 좌절되었으며, 그길로 뉴욕주립대에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야기, 그녀가 얼마나 속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지 등등을 한치의 변명도 없이 드러낸다.

둘째 그녀의 따뜻함이다. 장애를 극복한 사람에게서 볼 수도 있는 오만, 독선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꿈꾼다.

그녀는 타인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듣고 어설픈 조언을 하는 대신, 자신의 경험을 잔잔하게 들려줌으로써 용기를 주는 방법을 취한다. 이 책에서도 대학시험에 낙방한 독자의 편지에 대한 답장 성격의 글에서, 5년간의 유학 끝에 박사학위논문을 완성하였으나 원고를 도둑맞는 바람에 1년에 걸쳐 다시 논문을 완성하였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글을 읽고 있면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가 솟구친다.

세째 외람되게 말하자면 그녀의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참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군더더기가 없고 그렇다고 모자람도 없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알프레드 테니슨)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새뮤얼 버틀러)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마크 트웨인)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악을 행하는 것이 낫다. 그것도 적어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엘리엇)

 

밤에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 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김종삼 시인의 '어부' 중에서

 

스스로와 사이가 나쁘면 다른 사람들과도 사이가 나쁘게 된다(발자크)

 

너만이 너다 - 이보다 더 의미 있고 풍요로운 말은 없다(셰익스피어)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 E.B. 화이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새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게 하소서(구족화가 겸 시인 이상열)

 

나무는 땅이 하늘에게 말하는 언어(타고르)

 

이승에서는 그녀가 자유롭게 여기 저기를 여행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딸을 먼저 여읜 그녀의 어머니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님은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따님의 무덤까지도 돌보셨습니다. 이제 자책에서 벗어나십시오 그것이 그토록 사랑하던 따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2009. 6. 14.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