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으니

자작나무의숲 2009. 4. 9. 22:24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었다. 저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과 같은 책을 책을 발표하였고,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불안의 원인으로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들고 그 해법으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제시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벌은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윌리엄 제임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 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서구의 보통 시민에게 지위로 인한 불안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즉 자리, 성취, 수입을 놓고 걱정이 늘었다는 뜻이다.

 

어떤 것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다(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중에서).

 

귀족 계급의 지원을 받는 왕이 나라를 다스렸을 때 사회는 불평등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루소)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미국적 이상에 평등은 포함되지 않으며, 단지 초기의 엄격하게 관리되는 평등한 기회만 있을 뿐이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품위는 다른 사람의 증언에 좌우되지 않는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서).

 

농담은 비판의 한 방법이다.....유머는 불만을 제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부는 존중의 관습적 기초가 되었다.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만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돈이 필수적이었다(소스틴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중에서).

 

힘 있고 부유한 자를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가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몽테뉴).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인간 행동은 기독교적 관점과 로마적 관점 양쪽에서 해석할 수 있다(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중에서)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소로)

 

이제 규칙은 없다. 재능 있는 사람이 개인적 독창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신이 하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빅토르 위고).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갈수록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 원인과 해법을 쉽고 상세하면서도, 재미있게 적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2009. 4. 9.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