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우리법연구회의 추억 3가지

자작나무의숲 2009. 5. 8. 09:41

우리법연구회의 추억 3가지

1. 우리법연구회를 작명한 사람

  1988년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가 창립될 무렵이었다. 나는 창립 회원으로서 연구회 명칭을 짓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가 유력했다. 그런데 창립회원 중에 한 명이 서울대학교 출신이 아닌 것이 맘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우리(노동)법연구회’를 제안하였다. 일언에 거절되었다. 우리법연구회는 이미 있다는 이유였다. 그 때는 섭섭했는데,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되어 있고,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는 탈퇴간주가 되어 있는 지금에서는, 다행이다 싶다. 우리법연구회의 이름이 더 좋으니까

 

2. 우리법연구회에 예전부터 아는 사람이 있었다.

  1996년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하였다. 기존 회원으로 누가 있을까? 궁금하였는데, 놀랍게도 ooo 판사가 있었다. ooo 판사는 미모도 출중할 뿐만 아니라 법과대학 다닐 때 말을 건네 준 유일한 여학생일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대학교 졸업한 지 10년 정도 지나서 ooo 판사를 만났다. ooo 판사는 법과대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서울 사람 같지 않아 좋아하였는데(그 때도 ooo라는 영어를 쓰며 유식한 체 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보이지 아니 하였다. 그 이유는 본인이 쓴 에세이를 참조하시라. 내 입으로는 말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우리법연구회에서 대학교 1학년 때 잃어버린 친구를 찾다니......

 

3. 떠난 사람, 만난 사람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말하였다. ‘이 강은 바로 저와 우리와의 경계로서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무릇 세상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은 마치 이 물이 언덕에 제(際)함과 같으니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곧 그 '사이'에 있는 것이네’

  이해가 잘 되지 아니하는 분은 고 한기택 부장님이 살다 가신 길을 보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판사 한기택’이라는 책을 사보시라. 올해 초 부산에서 고 한기택 부장님의 아들 ooo을 만났다. 어찌나 술을 잘 먹든지. 의대생인지라 장차 무슨 과를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피부과, 성형외과’라는 대답을 하였다. 어찌나 대견하든지. 떠난 사람은 떠난 것이고, 또 올 사람은 올 것이고......ooo과 전화를 하면 목소리가 비슷해 한부장님이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궁금하시면 전화 한번 해보시길.......

 

                      2008. 8. 29. 우리법연구회 게시판에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