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부끄러운 대학생활

자작나무의숲 2009. 10. 18. 16:03

1983년 대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등교를 하려고 하는데, 전경들이 정문을 가로막고

나에게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였다. 나는 내 학교에 내가 가는데 학생증 제시가 왠말이냐며 거부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연행해'라는 명령을 하였고, 몇 명이 달려들어 나를 경찰차에 싣고 가까운 관악파출소로 연행하였다.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대기실 같은 곳에 나를 넣어 놓고 나가버렸다. 2시간 정도 파출소 대기실에서 멍하니 서 있던 중 나는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는 과정에서 연행되었음을 떠올렸고, 어쩌면 친구들이 파출소 밖에서 나를 기다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즉시 대기실을 나와 어떤 사람에게 학생증을 보여주고 가도 돼냐고 물은 결과 가도 좋다는 대답을 들었다. 친구들은 예상대로 파출소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다시 등교를 하였다. 나는 대학교 다니는 내내 그것이 부끄러웠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부끄럽다.

 

나는 학교 앞에서 연행될 즈음 임의동행을 거부하여야 했다. 학교에 등교하면서 전경들에게 학생증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죄가 될 턱이 없으니 마땅히 그래야 했다. 파출소에 연행된 뒤에는 불법구금을 당하고 있니 나를 풀어달라고 따져야 했다. 그리고 끝까지 학생증을 보여주지 말아야 했다. 법대생이라면 적어도 그 정도를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고, 나는 친구들의 안일을 걱정하는 방법으로 내 양심을 우회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른바 운동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26년이 지난 지금 '등교하는 나에게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법연구회가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라고 주장하고 입증하여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 다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고 좌경판사 물러가라'며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먼발치에서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나는 26년 전 그들에게 학생증을 제시하고 등교를 하여야 했듯이 또 다른 그들에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함으로써 좌경판사가 아님'을 확인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법원에 출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그 전에 그들은 나에게 좌경판사가 아님을 입증할 서류로 학생증이 아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과거에는 고작 학생증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가? 정녕 부끄러움과 용기 사이에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다.

 

                   2009. 10. 19.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