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7. 5. 3. 12:28

1. 개괄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었다. 작가는 1888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193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53년 사망하였다. 이 작품은 사후인 1956년에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만든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고 있다. 커튼처럼 드리워진 자욱한 안개와 병든 고래의 신음소리 같은 음울한 무적이 암시하듯 1막부터 티론 가족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던 가족들은 두려움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자 메리는 마약에서, 남편과 두 아들은 술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2. 발췌

메리 

난 이곳과 이곳 사람들이 싫어. 너도 알 거다. 난 처음부터 여기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다들 나가는데 나만 혼자야. 항상 혼자란 말이야.


티론

너희 둘은 카톨릭 신앙 속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유일하게 진실된 신앙인 카톨릭을 모독했어. 그래서 결국 자기 파멸에 이르게 된 거야!


메리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어쩔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씨름하지도 말아요. 운명이 우리에게 시킨 일들은 변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 무식한 돌팔이는 내가 아프다는 것밖에는 아는 게 없었어요. 통증만 없애는 건 쉬었죠.


유진이 죽은 뒤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애가 죽은 건 내 탓이었으니까요.


여긴 너무 쓸쓸해. 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으면서. 저들이 보이는 경멸과 혐오감 때문에 함께 있는게 싫었으면서. 저들이 나가서 기쁘면서. 성모님.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한 거죠?


왜 벌써 오는 거야? 오고 싶지도 않으면서. 나도 혼자 있는 게 훨씬 나은데. (갑자기 태도가 싹 바뀐다. 애절할 정도로 안도하면서 열성적이 된다.) 아, 가족들이 와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너무 쓸쓸했는데!


에드먼드

가끔은, 마약쟁이 어머니를 둔 게 너무 힘들어요!


4막

그러나 위스키를 그렇게 마셨는데도 현실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3막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절망감에 사로잡힌 슬프고 좌절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냉소적으로 다우슨의 시 <길지 않으리>를 낭송한다.)


길지 않으리, 울음과 웃음.

사랑과 욕정과 증오는,

우리, 죽음의 문 지나고 나면

그것들, 우리에게 너는 없으리니.


길지 않으리, 술과 장미의 시절도. 

어느 어렴풋한 꿈에서

우리의 길 잠시 나타났다. 이내

어느 꿈속에서 닫히리니.


제이미

빌어먹을, 창녀들 빼고 여자가 마약하는 건 상상도 못했었는데! (사이를 두고) 거기다 너까지 폐병에 걸린 거야. 그 바람에 난 무너져버렸지.


난 자신을 증오해. 난 복수를 해야 해. 세상 모든 사람들한테. 특히 너한테.


메리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3. 소감

작가가 이 작품을 탈고한 뒤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만큼 사적이고 아픈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 칼로타 몬트레이는 고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1956년에 이 작품을 발표하게 되고, 유진 오닐은 네 번째 퓰리처상을 받게 된다.


                        2017. 5. 3.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고   (0) 2018.11.11
맥베스를 다시 읽고   (0) 2018.07.10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고  (0) 2017.01.22
돈 카를로스  (0) 2016.05.20
맥베스  (0) 201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