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7. 1. 22. 13:05

1.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었다. 

이 희곡의 중요사건은, 포셔에게 구애할 바사니오의 구혼 자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친구 안토니오가 유대인 상인 샤일록과 맺게 되는 인육계약이다. 즉, 샤일록은 바사니오에게 삼천 다카트를 빌려주는데,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에, 아무 날 아무 데서 조건에 명시된 일정한 금액 또는 총액을 되갚지 못할 경우 그에 대한 벌칙으로 안토니오의 살 일 파운드를 샤일록이 지정하는 곳에서 잘라내 가진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다. 

샤일록이 이러한 조항을 넣는 이유는 안토니오에 대한 증오 때문이다. 상인 안토니오가 공짜로 돈을 꿔주니까 고리대금업을 하는 샤일록으로서는 이자를 적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재판은 공작의 의뢰에 따라 벨라리오 박사가 맡게 되어 있었는데 벨라리오 박사의 추천을 공작이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포셔가 맡게 되는데, 그녀는 당시 바샤니오와 혼인하기로 하고 교회에 가서 의식을 치른 상태였다. 포셔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샤일록의 자비를 구하며 바사니오의 제안에 따라 원금의 세배를 받고 계약서를 찢으라고 권하나, 샤일록은 이를 거절한다.

그 후 "계약서는 당신에게 피 한 방울 주지 않소. 명시된 문구는 '살덩이 일 파운드' 요. 그러니 계약대로 살덩이 일 파운드 가지시오. 하나 그걸 잘라 낼 때 기독교인 핏물을 한 방울만 흘려도 당신 땅과 제물은 베니스 국법에 의하여 정부로 몰수될 것이오"

그러자 샤일록은 제안한다. '계약금의 세 배로 기독교인 놔주시오' 라고. 그러나 포셔가 거절하며 '피 흘리지 말 것이며, 정확히 일 파운드 이상도 이하도 자르지 마시오'라고 명한다.

그러자 샤일록은 '원금을 주시고 날 가게 해주시오'라고 제안하나 포셔는 그마저 거절할 뿐만 아니라 '베니스의 법률에 규정된 바로는 외국인이 직접 또는 간접적인 시도 하에 시민의 생명을 노렸음이 입증되면 그 음모의 대상이 된 당사자 쪽에서 그의 재산 절반을 압수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부의 비밀 금고 안으로 들어가며 범법자의 생명은 모든 의견 다 제치고 오로지 공작 속에 달려 있다고 되어 있소. 바로 그 궁지에 당신이 처해 있소'라고 말한다. 


공작의 사면권을 행사하여 샤일록은 목숨은 구하는 대신 죽었을 때 소유한 모든 것을  사위인 로렌초와 딸에게 선물하고, 샤일록이 기독교 신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샤일록은 수락한다. 


2. 비판을 위한 비판

문학은 재판과 다르다. 문학도 걸핏하면 현실의 재판을 비판하니 법률가로서 문학에 대하여 시비를 걸어 보자. 


-포셔는 법관의 자격이 있는가?

이 작품이 1596년 1597년 씌여졌다고 하니 당시에는 법관이 사법시험을 합격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3권분립도 되어 있지 아니하고 통치자에게 일임되어 있을 터이니 그가 현명한 제3자에게 재판권을 위임하는 것은 넘어가기로 하자. 재판진행 솜씨를 보면 포셔에게 그 정도의 실력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바사니오와 샤일록이 계약당사자이고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의 보증인으로서 계약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사니오는 당사자 위치에 있으므로, 그와 혼인하기로 하고 교회에서 의식까지 치른 포셔가 재판을 맡았다는 것은 공정성측면에서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가까운 사람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있는 판사는 교통사고 범죄에 엄할 가능성이 있다. 절도 피해자가 된 경험이 있는 판사는 절도죄에 엄할 가능성이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판사들이 관대한 이유를, 판사들이 화이트칼라와 바슷한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한민국 소송법에도 당사자의 친족이거나 범죄 피해자일 때 판사는 그 사건에 관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법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 살을 자르면 피가 나오게 되어 있다. 살을 자르면서 피가 나오지 말라고 멀한 것은 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일 파운드의 살을 자르자면 필연적으로 오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오차가 생길지도 모르니 집행은 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하는 것도 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법은 자연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약서에 정해 놓은 벌금을 갖겠다는 것을 '거부하신다면 여러분의 헌장과 이 도시의 자유는 위험에 처할 거요!' 라는 샤일록의 요구에 따라야 할까?


그건 아니다. 우선 민법 제103조에 따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 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조항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갚지 않았다고 해서 채무자의 살을 취하겠다는 것은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 무효라고 선언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법 제2조에 따라 권리남용이어서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리라 본다. 샤일록도 '사람에서 떼어 낸 사람 고기 일 파운드 그것은 양고기나 소고기, 염소 고기만큼도 값지거나 이득될 것 없소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도 내 복수에 쓸모가 있을 거요'라고 말한 바도 있다. 심지어 샤일록은 공작 앞에서도 '안토니오 씨에게 제가 픔은 뿌리 깊은 증오와 모종의 혐오감 때문에 손해 보는 소송을 제기한다 이유밖에 댈 수가 없으며'라고 말한다. 이는 원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오로지 피고를 괴롭힐 목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금지한 권리남용의 원칙이 적용될 전형적인 사안이다.


-사면을 하면서 개종을 내결 수 있는가?

공작은, 계약서에 따라 살덩이 일 파운드를 달라는 소송을 한 샤일록에게 '외국인이 직접 또는 간접적인 시도 하에 시민의 생명을 노렸음이 입증되었다며 '음모의 대상이 된 당사자 쪽에서 그의 재산 절반을 압수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부의 비밀금고 안으로들어가며 법범자의 생명은 모든 의견 다 제치고 오로지 공작의 손에 달려 있다'는 포셔의 설명을 듣고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네 목숨을 뺏는 벌은 요청 전에 사면한다'고 하면서 음모의 대상이 된 안토니오가 자비를 베푸는 형식을 취하여 '샤일록이 기독교 신자가 될 것이며, 죽을 때 소유한 모든 것을 사위인 로렌초와 딸에게 선물한다'는 사면조건을 제시한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재산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사면권 행사에 부당한 것을 결부시키는 것이 아닌가?


인육계약이 당시 베니스 법령에 따라 무효라면 무효라고 선언하면 될 것이고, 무효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지, 사법적 기교를 통하여 인육계약은 무효로 만들고 당시 법령에 따라 유효하다고 믿고 계약서 조항에 넣은 외국인이자 이교도에게 목숨은 살려줄 테니 개종을 하고 재산은 사위와 딸에게 전부 상속시키라니 부당한 것 아닌가?


3. 사족

문학은 재판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재판이란 것이 인생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서 만나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양면을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으니 문학이 재판을 즐겨 차용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있을 수가 없고, 재판이란 늘 칭찬과 비판을 번갈아 가며 받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법률가 역시 문학에 관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법률가의 자기 방어인 동시에 문학의 논리적 비약에 대한 공격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글은 토론회 자료에 사용하기 위하여 일부러 논쟁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작가와 그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2017. 1. 22. 부산에서 자작나무




'독서일기(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맥베스를 다시 읽고   (0) 2018.07.10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0) 2017.05.03
돈 카를로스  (0) 2016.05.20
맥베스  (0) 2016.01.09
로미오와 줄리엣  (0) 201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