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사실성과 타당성

자작나무의숲 2016. 7. 30. 22:40

1. 법

위르겐 하버마스가 쓴 <사실성과 타당성>을 또다시 읽었다. 이번이 세번째다. 2001. 6. 6. 처음 읽었고, 2008. 2. 14. 두번째

읽었다. 


민주주의가 없는 법치주의는 행정국가로 전락한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없이는 법치국가를 정당화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국회나 법원의 담론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의 공론장이 더욱 중요하다. 시민사회와 공론장이 있을 때 사실성과 

타당성의 사회적 매개범주로서 법의 역할이 뚜렷해진다. 정당한 법은 의사소통적 권력으로부터 나오고 의사소통적 권력은 

다시 정당하게 제정된 법을 통해 행정권력으로 번역된다.


사회통합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규범은 그 규범을 준수하려는 의지를 사실적 강제와 정당한 타당성 모두를 통하여

산출해야 한다. 그러한 종류의 규범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타당성에 사실성의 힘을 부여할 수 있는 권위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사실성이란 '필요한 경우 제재를 통하여 강제되는 평균적인 규범준수라는 의미의 행동의 합법성'을 말한다면, 타당성

이란 '법에 대한 존경에서 나온 규범준수를 항시 가능하게 만드는 규칙의 정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판결

판결이 법질서의 사회통합적 기능과 법의 정당성 주장을 모두 충족하려면 일관성 있는 판결과 합리적 수락가능성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두 조건이 직접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판사의 판결 속에서 두 기준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의 조화로 풀이해볼 수 있겠다.


판결의 합리성 문제의 요체는 법의 안정성과 옳음을 동시에 보증하기 위하여 우연하게 등장한 법을 어떻게 내적으로는 일관성 있게 적용하고 외적으로는 합리적으로 근거지을 수 있는가에 있다.


하트는 현행법이 사태를 충분하게 정확히 규정하지 못한다면, 판사는 자신의 재량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정법은 불가피하게 도덕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관점이 판결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 드워킨의 권리이론의 전제다.


규범을 공평무사하게 적용할 때 비로소 개별사건에 대한 타당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 규범의 타당성만으로는 개별사례에서의

정의를 보증하지 못한다. 규범을 공평무사하게 정당화하는 맥락에서는 통상 미래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빈틈이 생기

기 마련인데, 규범의 공평무사한 적용이 이 빈틈을 메워준다.


규범과 원칙은 그 의무론적인 타당성에 기초하므로 단순히 특수하게 선호될 만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구속력까지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가치보다 더 큰 정당화의 힘을 갖는다. 헌법재판소가 가치질서론을 자신의 결정의 기초로 

채택하는 한, 비합리적 판단의 위험도 늘어난다.


헨리 J. 슈타이너는 판사가 가진 암묵적인 사회이론적 표상을 '사회적 비전'이라 부른다. 그것은 판사가 판결을 정당화하면서

사실을 확증하고 이것을 규범과 연관시킬 때 맥락을 형성한다.


3. 사족

사법부는 분쟁을 해결하는 헌법기관이다.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법부의 권위는 필수적이다. 판결이 사실성과 타당성을 

모두 갖출 때 사법부의 권위는 단단해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법부는 시민사회와 공론장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판결에 활용하여야 한다. 시민사회의 공론장이 법정에 연결된다면 법관은 사태와 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판결

의 영향을 충분하게 예상할 수 있으며, 논증의 과정을 더욱 칠칠하게 밟을 수 있지 않을까?


                           2016. 7. 3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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