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정치사회)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자작나무의숲 2015. 11. 21. 12:10

1. 개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를 읽었다. 저자는 대법관직을 퇴임하고,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관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10건을 추려 논쟁을 정리하고 저자의 견해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0건의 판결은 존엄사 사건, 삼성 사건, 포털사이트 명예훼손 사건,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 상지대 사건, 성전환자 성별정정 사건, 호주제 폐지 이후 관습법, 새만금/천성산 사건, 출퇴근 재해 사건, 퇴직금 분할지급 사건이다.  

 

2. 발췌

홈스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연방의회가 방지해야 할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발생시키느냐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대상을 결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가장 엄중한 보호막도 극장에서 거짓으로 '불이야'라고 소리쳐 공황상태를 야기하는 사람을 보호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사례를 들었다.

 

J. S. 밀은 <자유론>에서 '억압된 의견 안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또는 부분적인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다'며, '거짓된 신념조차 값지다'고 주장했다. '그에 관한 토론의 과정이 반대 관점의 진실을 시험하고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한 다수의견에서 내가 특히 공감한 부분은 "불의의 본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그것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권리란 고래의 원천에서만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권리는 지금 시대에 시급한 상태로 방치된 자유를 헌법적 법령이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더 나은 정보와 이해로부터도 도출된다"라는 구절이다.

 

사실 대규모 개발사업과 관련된 갈등을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법률상 쟁송 절차가 지니는 한계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법심사에서는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이 과거 사실을 확인하는 데; 집중될 뿐, 갈등의 창조적 해결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는 미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사법판단의 한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새만금 판결에서는 대법원 스스로 지나치게 사법적으로 자제한 측면이 있다.

 

1978년 미국 연방대법원 다수의견은 멸종위기종 보호법의 해석상 달팽이시어가 멸종위기종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므로 멸종위기종 보호법은 댐건설의 진척과 관계없이 적용되어야 하고, 적용 결과가 불합리하다고 해서 법원이 적용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고, 반대의견은 건전한 상식과 공공복리에 부합하는 해석이 있는데도 소극적인 법 해석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어느 대법원장이 했다는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다수가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는 다수의견을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환경 관련 사건에서는 특히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법학자 까렐 바샤끄는 1979년 프랑스혁명의 모토인 자유, 평등, 박애를 바탕으로 인권의 개념을 세 단계로 나눈 인권의 3세대론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제1세대 인권은 '자유'에 관한 것으로 시민적 정치척 권리를 말하며, 제2세대 인권은 '평등'과 관계되는 것으로 사회권적 기본권이 이에 해당한다. 제3세대 인권은 '박애'와 관계되는 것으로 환경권, 평화적 생존권 등을 말한다.

 

3. 소감

법원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토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법정에서도 소송당사자와 충분히 토론하지 않고, 합의과정에서도 재판부 구성원 간에 충분히 토론하지 않는다. 대신에 법정 밖에서 성명서만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판결이 토론의 과정이자 그 산물임을 입증하고 있다. 법률가는 물론이고 판결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감히 추천한다.

 

                         2015. 11. 21.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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