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암송

고은 '그꽃'

자작나무의숲 2015. 2. 23. 21:06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테니스동호회를 같이 하는 동료로부터 고은 시집 <순간의 꽃>을 선물받았다. 고은 시인은 연작시 <만인보>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시집은 작은 시 100여 편을 모아 놓았다. 시집 50쪽에 위의 시가 실려 있었다.

 

차를 운전하여 목적지에 도착한 후 돌아 올 때는 갈 때보다 훨씬 쉽고 빠르다. 아마도 가본 경험 때문이리라. 

 

인생을 산행에 비유한다. 정상을 목표로 숨가쁘게 오르지만, 산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산이 끝났을 때 산행도 끝나는 것이므로, 어쩌면 정상은 목표가 아니라 경유지, 아니 그 전과 그 후로 달라진다는 점에서 변곡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많은 사람이 하산 길에서 탈이 난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정상을 목표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산 길에는 정상에 오른 기쁨을 조금씩 억누르면서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도 보고 하산하여 만날 사람도 떠올리며 그렇게 걷는 게  어떨까? 피터의 법칙처럼 무능이 입증될 때까지 승진할 게 아니라 적당한 자리에서 창조적 무능력을 발휘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에게 이 시집을 선물한 선배도 나에게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 보라는 뜻에서 이 시집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2015. 2. 23. 창원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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