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암송

손수건

자작나무의숲 2011. 5. 21. 08:47

손수건

  -유홍준

 

그가 떠난 자리에 손수건 하나가 남아 있다

어떤 손수건엔

피가 묻어 있다

어떤 손수건은

뻘건

피가 굳어 뻣뻣하다

공원의 비둘기들이 모여 그 손수건을 쪼아대고 있다

 

친구가 보내준 시집의 일부다. 

1980년 고교 때 처음 만난 이래 31년 동안 우리는 친구다. 친구라도 어떤 때는 아주 친하다가 어떤 때는 그냥 친하다가 굴곡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는 한결같은 친구였다. 다만, 매일 만나거나 매년 만나거나 그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대학 땐 자취를 같이 하였다. 그는 가난한 국문학도였고 나는 계획이 분명한 법학도였다. 그는 밥을 자주 굶었고, 아르바이트로 신문배달을 하였다. 나는 그것을 지켜 보며 문학을 준비하는 것으로 선해하였다. 그가 대학신문 신춘문예에 '솔바람 눈바람'이라는 단편소설을 응모하였으나 아깝게 떨어진 후 그가 처음으로 펴내는 소설 또는 시에 관한 저작권은 내가 사기로 약속하였다.

그는 지금 고등학생용 국어 교과서나 참고서를 쓰면서 남의 소설 또는 시를 고를 뿐 직접 소설 또는 시를 쓰지 아니 한다. 그는 서울에, 나는 지방에 살아 우리는 1년에 1 ~ 2회밖에 못 만난다. 그래서 그는 내게 종종 책을 보낸다. <술의 여행>, <야생사과>, <낚시, 여백에 비친 세상> 등등

나는 우리의 약속이 이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저작권을 사기 위한 돈을 마련해야 하고 그는 소설이나 시를 쓰야 한다.

 2011. 5. 21. 진주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