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암송

이병주문학관에서 읽은 시

자작나무의숲 2013. 9. 20. 07:47

 

             북천-까마귀

                   유홍준

 

어제 앉은 데 오늘도 앉아 있다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고 바람이 날아다니고

계속해서

무얼 더 먹을 게 있는지,

새카만 놈이 새카만 놈을 엎치락뒤치락 쫓아내며 쪼고 있다

전봇대는 일렬로 늘어서 있고 차들은 행하니 지나가고

내용도 없이

나는 어제 걸었던 들길을 걸어 나간다

사랑도 없이 싸움도 없이, 까마귀야 너처럼 까만 외투를 입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낸다

원인도 없이 내용도 없이 저 들길 끝까지 갔다가 온다

 

(친구가 추석 전날 내 고향인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놀러 왔다. 친구의 제안에 따라 북천면 이명리에 있는

이병주문학관에 들렀다.

이병주작가는 1921년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나 북천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와세다대학교 불분학과에 입학했으나 학병으로 끌려간 중국에서 해방을 맞이 한다. 진주농업대학, 해인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다가 국제신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 및 주필로 활동하였으며 5 16 구데타 후 국제신보에 중립통일론을 주장하는 칼럼을 썼다는 필화사건으로 이른바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른 다음 소설가로 등단한다. 80여권의 작품을 남겼고 대표작으로는 지리산, 그해 5월, 관부연락선이 있다. 1992년에 사망하였다. 그가 한 "조국이 없다. 산하가 있을 뿐이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말도 유명하다. 문단에서는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 였던 작가에 대하여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국어교사인 친구가 설명해주었다.

위에서 인용한 유홍준 시인은 이병주문학관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위 사진은 이병주문학관이다. 왼쪽 건물에 문학관이, 오른쪽에는 세미나홀이 있다. 마당에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명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친구는 나와 33년 지기다. 고등학교 이래 지금까지 생애 대부분의 내용을 서로 알고 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자취생활을 같이 하였을 때 나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문학은 실패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을 해주기도 하였다. 그가 대학신문에 "솔바람 눈바람"이라는 단편소설로 현상공모에 응모하였는데 아깝게 대상을 놓쳤다. 그 뒤로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학교 시절 한국문학을 소개하였고 졸업 후에는 틈틈이 책을 보내주는 친구 덕분에 나는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병주문학관과 유홍준시인과 친구를 연결하는 것은 문학이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고 법학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므로 문학은 법학을 풍요롭게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학의 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믿는다. 2013. 9. 20.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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