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이덕일의 <고금통의>를 읽었다. 어제의 역사는 오늘에도 그 뜻이 통한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 오늘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솔로몬도 <전도서>에서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면서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서도 있었다'라고 말했음을 인용한다. 한 주제에 2쪽 이내로 서술하여 읽기가 편하게 되어 있다.
2. 발췌
조선과 명 사이의 교역이 조공무역인데, 조선이 일방적으로 명에 진상품을 갖다 바친 것으로 생각하지만 큰 오해다. 조공 사절 횟수를 두고 벌어진 실랑이가 이를 말해준다. 조선은 '1년 3使'를 주장한 반면에 명은 '3년 1사'를 주장했다.......조공품보다 명 임금의 사여가 많은 것이 원칙이었다.
80~90여 년 전 이들이 조국 광복을 꿈꾸며 군사 훈련에 청춘을 바친 곤명시의 운남육군강무학교 교정에 서니 역사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은 발해의 땅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한탄스럽구나(유득공의 <발해고>)
광해군 즉위 후 어린 영창대군뿐만 아니라 임해군도 사형당한 것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모든 것을 걸지 못했던 왕자의 비극이기도 하다.
청년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이상재에게 누군가 청년들 버릇이 나빠진다고 걱정하자 "내가 청년이 돼야지 청년들보고 노인이 되라고 하겠나"라고 받기도 했다.
정조는 자신의 어선 그릇을 보고 놀라는 신하들에게 "법만 가지고 저절로 시행될 수 없고, 말로 가르치는 것은 몸으로 가르치는 것만 못하기에 내 허물을 없앤 뒤에 남을 비판할 수 있다는 뜻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간원이 존경받은 이유는 고위직은 물론 임금에게도 쓴소리를 사양하지 않았던 강직함 덕분이었다....또 다른 이유는 백관 탄핵권이 있음에도 청한했기 때문이다.
여섯 명의 승지가 있었는데, 실장 격인 도승지나 나머지 승지와 부승지 모두 정3품이었다. 담당 분야가 따로 있어서 도승지는 이조를 담당했다.
철학도 없이 경쟁 체제로 내몬 것이 삶의 목적을 잃게 한 것이다. 삶의 목적이 뚜렷하면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만 마디 말로써 백성에게 선을 권하는 것은 한 사람의 현인을 천거해 선을 권하는 것만 못하다(최한기 <인정> 중)
말할 만한데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요, 말한 만하지 않은데도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다<논어>
명시는 대개 궁했던 사람에게서 나온 것(구양수)
저 소나무는 홀로 우뚝 치솟아서 차라리 꺾일지언정 굽어지지는 않으며, 눈과 서리도 옮길 수 없고, 비와 바람도 흔들지 못한다. 사철을 꿰뚫고 천추의 세월에도 그 가지와 잎을 바꾸지 않는 것은 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이남규)
3. 소감
역사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냥 살아가는 사람과 뭐가 다를까?
2014. 9. 13.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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