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 1>을 읽었다. 저자는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다. '과거에는 책이 사람을 형성했다면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며 시작한다. 1권은 디지털의 철학, 리얼 버추얼 액추얼, 파타피직스, 지표의 상실, 실재의 위기로 구성되어 있다.
2. 발췌
플루서는 인류의 역사를 실존에 대한 소외의 극복과정으로 설명한다.
대안적 세계를 디자인하는 인간은 더는 객체를 인식하고 변형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앞으로 던져서 기술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존재, 즉 기획이다.
사물이 원래 속한 익숙한 맥락에서 벗어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그 존재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고립은 이렇게 평소 보지 못하던 것을 보도록 관객의 시각을 조직한다. 작가에 따르면 "모든 예술행위는 우리가 무심코 넘겨버리는 것을 잘 볼 수 있게 환기시키는 것"이며 작가란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것을 보게 하는 일종의 우체부"다.
가상은 실재가 있을 때만 허구다. 실재가 사라진 곳에서 그 허구는 실재보다 강렬한 초실재가 된다. 어떤 것이 리얼한지 여부를 우리는 이미 현실이 아니라 사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디지털 시대에 가상은 미리 존재하는 현실을 자신의 원상으로 갖지 않는다. 그것의 원천은 플루서가 말한 "대안적 세계", 즉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과거의 모상이 아니라 미래의 모형이다.
미디어의 '사실'이 결국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안더스의 말처럼, 진기종의 방송에서 관객이 보는 '사실'은 일부러 조잡하게 만든 미니어처에 불과하다.
정보혁명의 인터페이스는 인간을 상수로 놓고 기계를 변수로 놓는다. 여기서 디지털 가상마저도 아날로그 현실과 똑같이 디자인하려는, 이른바 '디지로그'의 복고적 경향이 발생한다.
진보나 보수라는 산업혁명이 정치학으로는 디지털 대중의 특성을 이해할 수 없다. 게임의 상황이 어떻게 계열화하느냐에 따라 디지털 대중은 그 어느 쪽으로든 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술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제공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한 복잡한 사태를 영웅적 스트로리로 압축 변환하는 능력이다.
에코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음모를 폭로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면 독창적인 내용을 구매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구매자가 이미 알아낸 것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인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위치한 계층은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배제'를 당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다수에 속해야 한다. 이 원시적 생존본능에서 소환되는 것이 바로 사회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안전한 가치, 즉 애국이다.
디지털은 니체의 말을 다시 불러낸다. "진리보다 중요한 것이 예술이다"
실제로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기억은 항상적이지 않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주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3. 소감
디지털 시대는 아나로그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기록된다. 원본과 카피가 구별되지 않고, 카피에 의해 원본이 손상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14. 7. 6.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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