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10. 7. 22:01

1. 개괄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읽었다. 이현주 목사가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의 도덕경을 강독힐 떼 주고 받은 말을 정리한 책이다. 도덕경 81장 전부에 관하여 원문과 번역을 실은 다음 이현주목사가 장일순 선생께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 불경을 예를 들어 도덕경을 해설하는 것이 눈에 띈다.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하였고, 1961년에 평소 주창하였던 평화통일론이 죄가 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른 바 있다. 그 이후 지학순 주교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였다.

 

2.  발췌

천리를 어기고 인간의 사리를 도모하는, 그게 바로 作爲가 되는 거라. 가끔 무위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지. 예수님 말을 빌리면 아버지 뜻대로 하는 것, 아버지와 함께 하는 그것이 무위라. 도와 함께 하는 것이 무위고.

 

무위란 수동적 적극성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업을 짓지 않는다는 건데, 무엇을 소유하려고 하면 바로 그게 업을 짓는 것이거든.

 

부유불거 시이불거 夫惟不居 是以不去라, 공을 세운 자리에 머물고자 하지 않으니 이로써 사라지지 않는다.

 

선식이위기로되 당기무하여 유기지용이라 (挻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되 거기가 비어 있어서 그릇이 쓸모가 있다.

 

가장 높은 지도자는 아랫사람이 그가 있는 것만 겨우 알고, 그 다음 가는 지도자는 가까이 여겨 받들고, 그 다음 가는 지도자는 두려워하고, 그 다음 가는 지도자는 경멸한다. 그러므로 성실함이 모자라면 아랫 사람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삼가 조심하여 말의 값을 높이고 공을 이루어 일을 마치되 백성이 모두 말하기를 저절로 그리 되었다고 한다.

 

유가는 인간의 현실 생활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고 하는데 도가는 자연 질서를 위주로 하거든. 그렇게 되니까 인위적으로 사람이 만든 것에 대해서는 그걸 그만두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거라. 거기에 말하자면 큰 차이가 있게 되는 거지

 

까치발로는 오래 서지 못한다. 가랑이를 한껏 벌려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는 자는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옳다 하는 자는 인정받지 못하며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다.

 

도를 잃은 뒤에 사람들은 덕을 말하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을 말하며 인을 잃은 뒤에 의를 말하고 의를 잃은 뒤에 예를 말한다.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알며 창문으로 엿보지 않고 하늘의 도를 아니. 不出戶 知天下 不窺 牖 見天道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일이 있잖나? 우리의 일상이 그게 곧 불도거든

 

知者不言 言者不知=참으로 아는 자는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고 말이 많은 자는 참으로 알지 못하는 자라.

 

강과 바다가 넉넉히 모든 골짜기의 임금이 되는 것은 그것들 아래에 있기 때문이요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임금이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백성 위에 오르고자 할 때에 반드시 말로써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할 때는 반드시 몸을 뒤에 둔다.

 

나에게 보물이 셋 있어서 소중하게 지니는데 하나는 사랑이요 둘은 검소 셋은 스스로 우쭐대며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용감하고 검소하기에 넓으며 사람들 앞에 스스로 나서지 않기에 뭇 관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다가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지며 만물 초목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다가 죽으면 바짝 말라 단단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못하다. 착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착하지 못하다. 아는 사람은 아는 게 많지 않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3. 소감

노자의 도덕경을 처음 읽은 것은 1983년 대학교 1학년 때다. 학교에는 늘 시위 현장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못나가겠고 그렇다고 사법시험 공부하러 도서관 가기는 싫었던 그 때 우연히 노자의 도덕경을 읽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내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가 내가 이해하는 무위와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를 알아줄 것만 같은 사람이 2천 년 전에 있었다는 게 고마웠다.

오늘 다시 도덕경을 읽으니 여전히 오독의 위험이 있음을 느낀다. 공자의 논어를 읽고 바로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주장을 비교함으로써 뜻을 명확히 하는 독서법도 좋을 것 같다. 

 

            2014. 10. 6. 창원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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