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기타)

대중문화의 이해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3. 3. 19. 08:00

1. 개괄

김창남의 <대중문화의 이해>를 읽었다. 저자는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문화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 대중문화를 통해 나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여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성찰과 창조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문화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의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발췌

다시 말하기도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이든 급격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문화에 대해 사고하고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처럼 마치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원리인 것처럼 강요되는 문화에 대해 그 역사적 근원을 이해하고 그것이 단지 인간 사회의 산물이며 따라서 늘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는 마치 흩어져 있는 모래알들이 시멘트에 응고되어 고정된 형태를 유지하듯 이 고립되고 분산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자리에 붙잡아둠으로써 사회전체를 유지시키는 일종의 사회적 시멘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대랑복제의 기술은 예술이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신비적인 분위기를 소멸시키면서 대중의 비판적 수용의 가능성을 열었다. 결국 현대의 문화적 기술을 진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예술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사회를 단순히 강압적인 힘만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지적 리더십을 통해 이끌어가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는 피지배계층이 현재의 권력구조와 사회질서를 능동적 자발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능한 한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중문화 상품의 생산자들은 이미 시장에서 상품으로 인정받은 요소를 되풀이하여 사용함으로써 안정적인 판매를 이루고자 한다. 여기서 대중문화의 반복적이고 상투적인 형태가 나오게 된다.

 

IMF 경제위기는 한국 사회가 오랜 경제주의적 발전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좀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대중의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구 시대의 패러다임은 부정되고 비판되었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패러다임은 제시되지 않았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함께 비정규직은 늘고 대중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분명한 것은 정치권력이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과거 군사정권 시대와 같은 권위주의적인 정치적 관리체계로 장악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대중문화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의 힘, 문화산업과 대중 자신뿐이다. 결국 앞으로 대중문화 공간은 이 두 힘 사이의 끝임없는 갈등과 투쟁, 타협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서적 음반 TV 영화 등 아날로그식의 정보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매체 형식으로 존재하던 대중문화의 영역들은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하면서 영상 음성 텍스트를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전통적인 친밀성이 관계의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요즘 시대의 친밀성은 관계의 빈번함에서 나온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다시 창의력과 상상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주화와 함께 표현의 자유가 만개하면서 생성되었던 창의력과 상상력은 상업주의와 시장논리가 문화 영역 전반을 지배하면서 다시 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토니 베넷의 주장대로 중요한 것은 대중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지배 블록에 대항하여 사회세력의 광범위한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중을 구축하고 우세한 문화적 비중과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중요성을 높이는 것이다.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공존하는 복합적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대안 담론의 추구가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성의 완성과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사회적 과제는 때로 이율배반적이며 상호모순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계급주의와 시민주의,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사이에 상호 연대의 계기 못지않게 상호갈등의 계기가 자주 드러나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거 산업화 시절 신분 상승의 가장 중요한 통로역할을 했던 교육이 돈 놓고 돈 먹는 머니게임으로 변질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드물어졋고 이제 연예계가 유일하게 남은 사회적 이동의 통로가 된 것이다.

 

IMF 사태나 금융위기로 늘어난 실직자들에게 노는 일은 끔찍한 고통을 의미하며, 직장을 잃지 않은 사람들에게 노동은 거부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설사 과로를 하는 한이 있어도 실직보다는 나은 것일 수밖에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의 양은 줄어든다. 그러나 이는 다수를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소수 사람들이 노동을 과점하게 하면서 나머지를 항구적인 주변부 노동자로 전락시킨다.

 

놀이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노동만큼 중요한 삶이며 어떻게 보면 노동보다 더 중요한 영역이 되고 있다.

 

자유롭지 않으면 그것은 노는 것이 아니다. 참여를 강요당하는 놀이, 의무가 된 놀이, 중독된 놀이는 결코 즐거울 수 없다. / 논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일상에서의 탈출, 특히 노동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 놀이의 의미는 이처럼 일상적 위계를 벗어나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3. 소감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를 보는 것도 재미 있고, 유익했다.

 

 2013. 3. 19.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