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박사 <인문고전강의>를 읽었다. 저자가 2009년 서울시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에서 한 고전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텍스트로 사용된 고전은 일리아스, 안티고네, 니코마코스 윤리학, 신곡, 군주론, 방법서설, 통치론, 법의 정신, 직업으로서의 정치, 파놉티콘, 거대한 전환, 논어다. 책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사시는 구구절절 마디마디 모든 사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시인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사건만을 골라서 쓰는 겁니다.....사건의 핵심을 잡아내어 그것을 중심으로 서술하기, 이것은 모든 글쓰기에서 기본이 되는 방식입니다.
진짜 공부는 정답이 없는 것들에 대하여 한없이 궁리하는 것, 즉 내 앞에 있는 대상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일리아스>에서 명예는 자신을 희생해서 위험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온갖 선물을 다 준다고 해도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 가늘고 길게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만큼이나 사랑하는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드디어 아킬레우스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죽으러 갑니다. 그가 전투에 임하여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운명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아킬레우스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시작점입니다.
크레온 나는 이 나라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하나?
하이몬 한 사람에 속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닙니다.
크레온 국가는 그 통치자의 것으로 간주되지 않느냐?(안티고네 중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따르면, 앎과 삶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느닷없이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합리적입니다.
중용은 산술적으로 딱 가운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뭐든 중간만 하면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 적절한 것을 취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실천적 지혜는 보편적인 것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까지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두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에 들어가려면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합니다. 지옥은 절망의 장소입니다.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이 문장을 "지옥에 가지 않아도 현실세계에서 희망을 버리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란 뜻으로 해석합니다.
神과 物 사이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 모두 불멸을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불멸에 이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첫째 단계는 자식은 낳는 것입니다.....둘째 단계는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진리를 관조하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무력과 설득력을 각각 사자와 여우에 비유하면서, 새로운 군주는 사자이면서 동시에 여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티븐 J. 굴드가 정리한 다윈 이론의 핵심입니다. 더 뛰어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우연히 환경에 적합했던 종이 살아남는다는 말입니다.......여기서 분명한 것은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겁니다.
<풀하우스>의 책표지에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종의 기원>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몽테스키외는 잉글랜드의 이론과 실제를 나름대로 변형해서 수입한 것입니다. 그가 중점적으로 고려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질적 재화의 생산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들의 도덕적 기질과 성향입니다.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법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자연법, 국민의 정신, 정체의 원리,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사법권은 속성상 특정 계급이나 직업이 독차지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대표하기도 하고 아무 것도 대표하지 않기도 하다. 따라서 사법권은 계급이익의 충돌에서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법의 정신 중에서)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업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본문에서 베버는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직업정치가와 '정치를 위해서 사는' 직업정치가, 즉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는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입니다(막스 베버).
미합중국의 정당들은 헌법 해석에 대한 과거의 대립이 사라진 후에는 순전히 관직사냥 정당이 되어버렸으며,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핵심적 정강도 득표가능성에 맞추어 바꾸어 버립니다.
지도자는 영웅도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지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아직 가능한 것마저도 달성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아예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막스 베버)
벤담은 인간의 고통과 쾌락을 계산해서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법률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근대 이후에 의회를 경시하는 정치지도자는 기본적으로 벤담의 공리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잘 구현된 조직이 기업입니다.....그런 점에서 기업이 작동하는 원리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근대 감옥의 목적은 "노동의 가치와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습득"하는 데 있습니다.
공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세계에 근거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말과 행적을 기록해서 후세 사람들이 그 기록을 보고 판단하게 했습니다. 최종근거를 역사에 두었습니다. 이런 기록을 춘추필법이라 하기도 합니다.
자 가라사대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로우니라(논어)
고전은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에서든 읽어도 좋다.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에서든 읽어도 좋으니 고전이다. 고전을 언제, 어디에서 적용할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2011. 8. 15. 진주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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